어쩌다 연애 중

04 : 어쩌다 연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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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애 중


W. 띵동댕







머리가 멍해졌다. 실제로 만난 것도 아니고 핸드폰 속에서, 통화할 때 만난 사람인데? 게다가 영상 통화할 때 내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비춰진 깔끔한 방 안에 걸려 있던 빳빳한 교복은 우리 학교 교복도 아니었다. 어느 학교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학교 교복이 아니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애당초 우리 학교 교복이었다면 영상 통화를 하던 그 당시에 내가 알아봤겠지!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 천안에 살았었어. 서울은 처음이라 잘 부탁해!”





정신 못 차리고 복잡해진 머릿속을 헤매고 있을 때 전학생 전정국은 어느새 자기소개를 마친 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선생님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큰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긴장됐는지 살짝 붉어진 얼굴은 자기소개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에 뿌듯함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그 뿌듯한 얼굴로 아이들을 살펴보듯 교실을 쓰윽 훑더니 내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아주 잠시였을 수도, 혹은 꽤나 오랜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을 때 시간이 멈춘 듯 내 몸은 얼어붙었고 자연스레 표정관리도 하지 못했다. 내 표정을 보고 전정국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진 않았을까. 후회감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정국이는… 저기, 윤서 옆자리에 앉으면 되겠다. 우리 반이 홀수라 짝이 하나는 꼭 없었는데. 잘 됐다, 그렇지?”





호호, 웃으며 말을 한 선생님은 전정국의 등을 부드럽게 밀며 앉을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셨다. 저절로 내 시선도 선생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했는데, 전정국이 앉을 자리를 의도치 않게 확인한 난 이건 정말 아니라고,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윤서는 내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그 말은, 전정국 역시 내 뒷자리에 앉는다는 것이다.





“어떡해, 진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흠칫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다. 하아- 그 어느 때보다 더 무거운 한숨이 나를 지배했다. 춤이 잘 안 춰질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전정국은 다시금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조금 전 지정받은 자리로 이동했다. 자기소개할 때 긴장했던 게 풀렸는지,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절한 발걸음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본인의 자리에 앉은 전정국은 가방을 내려두고 윤서와 짧은 인사를 했다.





제발… 제발 전정국이 날 알아보지 못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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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전정국의 눈치를 보고 다니느라 많이 피곤해진 탓에 점심을 거르고 교실에 혼자 남아 잠이나 자려고 했다.





“댄스부 집합은 1시니까… 애들 슬슬 교실 들어올 즈음에 일어나면 되겠다. 친구들이 깨워주겠지.”






곧 있을 졸업식 무대에서 춤을 출 예정인데, 이따 점심시간에 춤을 출 노래를 고르는 회의를 하기로 했다. 중요한 회의인데 부장인 내가 빠지면 큰일이니 혹여나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에 필통 속 노란 포스트잇을 꺼내 두꺼운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꼭꼭 눌러 글을 적었다.



12시 50분까지 나 좀 깨워줘! 누구든 상관 없으니까 꼭!!



포스트잇을 책상 모서리에 안 떨어지게 꼭꼭 눌러 잘 붙여두고 엎드려 잠을 청했다. 이 정도 대비를 해뒀으니, 오늘은 늦는 일이 절대 없을 거다. 안심하고 잠이나 푹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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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김여주.”





한참 푹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날 깨우며 등을 톡톡 두드렸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중저음의 목소리. 누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거기서 거기인 흔한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목소리였다. 거기에 약간의 비누냄새를 곁들인. 우리 반 남자애 중 비누냄새가 나는 애가 누가 있었지.



평소에 한 번 자면 일어나기가 정말 힘든 나라서 정신은 깨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내 몸뚱이는 도통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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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일어나지. 한 번 깨우기 시작했으니까 그냥 둘 수도 없고. 메모지까지 붙여둔 걸 보면 중요한 것 같은데… 얠 어떻게 깨우면 좋을까.”





웅얼거리는 듯한 낮은 혼잣말을 하더니 나를 기필코 깨우려는지 등을 조금 더 세게 치며 다시 날 불렀다. 등에 계속해서 가해지는 타격감 때문인지, 아니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때문인지 내 몸을 움직이게 했다.





“5… 5분만…”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날파리를 쫓듯 휘휘 내저어 내 등을 때리는 손을 멈췄다. 그러자 조금 멈칫하더니 다시 내 이름을 부르며 등을 흔들고 때리며 날 어떻게든 깨우려 애썼다.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조금씩 치미는 짜증에 내 등을 괴롭히는 손을 꽉 잡아버리고 말았다.





“으음… 대체 왜 깨우려 하는 건데…”


“네가 깨워달라고 메모지에 적어 둬서. 중요한 일인가 싶어서.”





날 깨우는 얘의 말에 머릿속에 번떡 생각이 났다. 방송부 회의!




“헐 미친미친미친 미쳤어.”





이렇게 중요한 회의를 잊었단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빨리 뛰며 정신도 바짝 들었다. 그래도 일단, 날 깨워준 애한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지. 서둘러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내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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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





날 깨워준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상통화남이었다.


내 인생 조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