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연애 중

05 : 어쩌다 연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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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애 중


W. 띵동댕








담요를 걷어내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전정국이었다. 오묘한 미소를 띤 전정국의 표정은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했다.





“어… 어! 깨, 깨워줘서 고마워.”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전정국까지 맞닥들이니 혀가 이리저리 정신없게 꼬여 말도 더듬고 발음도 부정확해졌다.


그래도 다행히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왜 자꾸 웃는 거지.





“하하… 그러면 난 가 볼게! 회의에 늦으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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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어디서 나 보지 않았어?”





대충 대화를 끝내고 방송부 회의로 가려던 찰나에 전정국이 혹시나 하는 말투로 물어본 말은 다시금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게다가 말투와 다르게 표정은 진지한 게 영상통화를 했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예졌다. 원래 난 이렇지 않은데. 당황이란 걸, 긴장이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얼마 전 전정국과 영상통화를 하며 일어난 그 일 때문인 걸까? 그게 들키면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의식한 나머지 말이 꼬이고 꼬이는 건 아닐까?





“어…? 어, 어디서 봤을까? 우리 학교 댄스부 인스타에서 봤나? 아니면 그냥 지나가다가 봤을 수도. 내가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 어쩌면 네 주변 지인들이랑 닮았을 수도 있겠다. 사촌 동생이나 어릴 적 알았던 친구라던지! 뭐 그런 것들? 단순하게 기분탓일 수도 있고. 절대 통화를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닐 거야!”





너무나 놀란 마음에 말을 횡설수설 내뱉고 말았다.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영상통화!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총동원해 전정국이 내가 익숙하다는 걸 다른 이유로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제발 알아보지 말아라, 저번 통화에 대해선 잊어라, 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 또한 말로 나와버린 것이다. 





“어? 맞다, 나 댄스부 회의 가야 해. 너랑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다시금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표정관리를 했다. 방금 내 표정은 어땠을까.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표정이었을 거다. 이럴 땐 재빨리 수습을 하고 자리를 뜨는 게 좋은 방법이다.





“그냥 내가 방금 했던 말 다 잊고! 너랑 나는 오늘이 초면인 거야, 알았지?”





손 흔들어 인사하고 교실을 떠나려고 일어서려는데, 내 손이 무언갈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으로 내가 잡고 있는 무언갈 확인하려 고개를 숙였다.





“ㅅ, 손?”





내가 잡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전정국의 손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괴성을 지르며 손을 내팽개치듯 놔버리고 말았다. 그러곤 도망치듯 재빨리 교실에서 뛰쳐나와 댄스부 교실로 달렸다.


제발, 전정국이 날 눈치채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 눈치 못 채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만. 하지만 전정국이 그날, 그 영상통화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알고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낸다면 내가 지금까지 길러왔던 이미지가 망쳐지는 건 한순간이니까! 대체 누가 또래 남자애한테 다짜고짜 납치범이라고 바득바득 우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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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안, 미안. 또 늦어버렸네”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정해진 시간보다 7분 늦게 도착했다. 다행히도 댄스부원들 표정을 보니 그다지 화가 난 것 같진 않았다. 뭐, 이런 건 일상이라 화 낼 일도 아니라는 그런 표정?





“그래도 있잖아, 얘들아! 난 노래 생각해 왔어. 관람객들의 호응을 끌어들이려면 많이들 알고 있을 대중적인 노래가 좋지 않을까?”





내 의견에 부원들은 금세 집중하는 표정으로 회의에 참여하며 본인들의 여러 의견들을 제시했다. 순조롭게 회의는 진행됐고, 그로 인해 예상 시간보다 훨씬 빨리 노래를 정했다.





”자! 그러면 졸업식 분위기를 높여줄 우리의 공연곡은 아이브의 After LIKE로 결정!“





회의를 끝마치고 다시금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은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고 난 잠깐 친구들과 모여 이곳에 오기 전 상황을 설명했다.





“… 그래서 얼른 일어나려고 하니까 나랑 걔랑 손을 잡고 있는 거야. 근데 의문인 게, 내가 걔 손을 왜 잡고 있었지?”





난 정말 진지한데, 효재와 민정이, 예원이는 내 말을 듣는 줄곧 광대가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올, 김여주 이제 드디어 남친이란 게 생기는 거야? 잘생겼어? 왜 그동안 접촉도 없다가 학년 끝나가니까 썸타고 그러냐.”


“그니까, 내 말이! 썸 타고 그럴 거면 진작 했어야지. 이제 연애고 뭐고 공부할 시간밖에 없어, 우리.”





아무래도 쟤들은 전정국이 전학생이란 걸 아직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썸? 연애?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좌우명 중 하나가 스무 살 전까지는 연애 하는 거 아니다! 인데 말이다. 학생 때 연애는 진정으로 사랑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큰 의미도 없이 감정 낭비 시간 낭비 돈 낭비다. 주변에 사귀는 애들 보면 1년 갈 거다, 결혼할 거다 말만 많고 100일쯤 가면 헤어지는 게 대다수다. 그러니 학생 때 하는 연애는! 그저 보여주기식 연애일 뿐이니 학생 땐 춤이나 춰야 한다.





“야, 그건 그렇고 우리 춤 연습이나 좀 하다 갈래?”



전정국이 전학생이라는 말을 짧게 해준 뒤, 주제를 돌리려고 머릿속에 생각나는 말 아무 거나 내뱉었는데 아까부터 곰곰히 무언갈 고민하던 예원이가 아! 소리를 내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정국 걔, 전학생이라며. 근데 왜 학기 초도 아니고 학기 말, 그것도 졸업하기 두 달 전에 온 거지?”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어깨만 으쓱해 보이곤 넘어가려 했는데 예원이의 말을 뒤이은 효재의 말이 내 머릿속을 마구 뒤섞었다.





“만약에, 강제전학을 온 거라면? 여기가 초등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 가겠다고 전학까지 올 리는 없잖아.”





그런 거라면 안 되는데. 내 활짝 열린 길이 학폭 가해자 전정국 때문에 막히면 안 되는데!


하… 전정국이 내 인생에 나타난 후부터 모든 일이 꼬이고 또 꼬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쟬 떼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