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연애 중
W. 띵동댕
친구들은 어느새 대화의 주제를 다른 데로 옮기곤 큰 소리로 웃으며 수다를 떨었지만 나는 수다에 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멍한 상태로 생각에 잠겼다.
나, 김여주. 꿈은 대한민국 최고의 댄서. 네이버에 ‘ㄱ’만 써도 연관 검색어에 ‘김여주’가 가장 처음 나오는 게 내 꿈이다. 이런 앞길이 활짝 열린 내 꿈이 학교폭력의 가해자일 수도 있는 전정국에 의해 망쳐버릴 순 없다.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해봐도 예원이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며 떠날 생각이 없었다. 이윽고 왜 저런 생각을 난 하지 못했을까, 하는 나에 대한 원망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아니야, 애초에 점심시간에 잠을 자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이건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니 더 이상 전정국과 마주하지만 않으면 될 거라고 애써 위로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 친구들과의 수다에 끼려고 했던 찰나, 점심시간이 끝남을 예고하는 예비종이 울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돌아갔다.
“정말로, 전정국이랑 말만 안 하면 돼. 3학년도 다 끝나가는데. 뭐가 어렵겠어.”
교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머릿속에 그렇게 새뇌이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교실로 들어가 내 자리에 앉았다.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꽤나 나에게 말을 걸고 싶었을 텐데 다행히 전정국은 남은 교시 동안 나를 포함한 아무런 사람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다행인 거지.
“자자, 모둠활동할 거니까 책상 돌려라. 모둠은 내가 사전에 정해 왔고. 책상은 다섯 개씩 붙여주면 돼.”
시간은 흘러 드디어 마지막 교시가 되었다. 모둠활동을 할 거라는 음악 선생님의 말에 평소 모둠활동을 좋아하던 난 마음이 마구마구 들떴다. 재빨리 책상을 돌려주고 정해진 조를 불러줄 선생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 3조는 김여주, 양수빈, 이아영, 이경준, 전정국. 저기, 2조 옆에 앉고. 4조는…”
수빈이, 아영이, 경준이, 전정국.
“… 전정국?”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전정국의 이름을 불러버렸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음악 선생님을 노려봤지만 선생님은 다른 조들의 조원들을 불러주느라 바쁘다. 게다가 몇몇 여자아이들은 나랑 똑같은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나는 신경도 안 쓰시겠지.
하는 수 없이 책상을 다섯 개로 모아 돌려준 후 우리 조 3조가 앉을자리로 필통과 음악 교과서를 들고 이동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이번 모둠활동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전통 악기를 조사해 발표하는 거야. 총 세 시간 줄 거니까 시간 분담 잘하고. 발표 점수 많이 줄 거야, 발표 준비도 잘해야 한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곤 회색빛이 도는 프린트를 각 조마다 나눠주셨다.
“… 우리 조는 사부, 즉 실로 만든 악기를 조사하는 거지! 대표적인 거로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이 있으니까 조사해 보자!”
한참 동안 정적이 돌다 내가 입을 열자 조원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발표 준비는 내가 할 테니까 남은 네 명이 악기 조사를 해줄래?”
“그래! ppt는 경준이가 만들고, 아영이하고 내가 가야금, 거문고 조사할게. 여주랑 정국이가 해금하고 아쟁 조사해 줘!”
결국 둘둘씩 나뉘어 악기를 조사하기로 의견이 모였는데, 수빈이가 먼저 재빨리 행동해 아영이를 데려가 버렸다. 결국 전정국과 내가 짝이 되어버렸다. 같은 조가 된 것만으로도 최악인데, 같이 악기 조사를 해야 한다니.
“그러면, 약간 자리를 바꿔볼까? 가장 끝쪽에는 내가 앉을 테니 마주 보거나 옆에 앉는 식으로 짝끼리 자리 바꾸자.”
오늘따라 적극적인 경준이 때문에 나와 전정국은 어느새 나란히 앉게 되었다. 앉자마자 잠깐 어설픈 눈 맞춤을 해버렸다.

“……”
너무나 놀란 나머지 내가 먼저 고개를 돌리고 작고 빠른 목소리로 전정국에게 나눠서 악기 조사를 하자고 했다. 최대한 서로 대화를 줄이려는 의도였다.
“아쟁이랑 해금, 두 개니까 나누자. 내가 아쟁 할까? 넌 어떤 거 조사하고 싶어? 너한테 맞출게, 내가.”

“아니면, 총 세 시간을 주시니까 한 시간은 발표 준비를 한다 치고 한 시간씩 한 악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해볼래? 예를 들어 악기의 역사나 만든 사람. 악기의 특징과 구조 이런 식으로! 그러면 더 완성도 높은 발표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한 자 한 자 꾹꾹 힘줘서 말하는 전정국 때문에 무언가 압도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 그래!”
전정국이 말한 방법으로 조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횟수도 늘어날 텐데 알겠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거, 조사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면 될 거다. 다른 이야기는 아예 안 하면 돼!
“그러면, 혹시 모르니까 전화번호부터 교환할래? 조사하다 연락해야 될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그렇게 하면 번거로우니까 페메나 디엠으로 연락하는 건 어때?”
전화번호를 교환하게 된다면 영상통화 기록이나 내가 보냈던 메시지를 통해 내 존재를 완전히 알게 될까 봐 최대한 다른 방법으로 말을 꺼냈다. 너무 다급하게 말해 의심을 살 것 같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어지는 전정국의 말에 난 모든 게 망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 내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를 안 해서…! 연락처 교환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아. 미안.”
정말 미안해하는 전정국의 모습에 차마 오픈 채팅을 하자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되었다. 쟤가 저런 표정만 안 지었어도 오픈 채팅을 하자고 했을 텐데. 연락처 교환은 정말 친한 친구랑만 한다는 핑계를 대며 말이다.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하하…”
결국 하는 수 없이 나오려는 한숨을 꾹꾹 참으며 내 번호를 입력했다. 아주 잠깐 우리 엄마 번호를 쓸까 싶었지만 금방 들통날 부질없는 짓이란 걸 깨닫고 정확한 내 번호를 입력했다. 어쩔 수 없다, 이젠. 돌아갈 길이 없다. 영상통화 일을 전정국이 확신을 하게 된다면 협박을 하거나 부탁을 해서라도 입을 닫게 만들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