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연애 중

08: 어쩌다 연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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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연애 중


W. 띵동댕








한 시간 연속으로 춤을 추는 바람에 허기진 배를 퉁퉁 두드리며 예원이와 편의점에 들렀다. 뭘 살까 고민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나나우유 두 개를 집었다. 하나는 내 거, 하나는 예원이 거.





“오늘은 언니가 쏜다!”





두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예원이에게 쏘는 시늉을 하자 예원이는 헛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바나나 우유 하나 가지고 호들갑은. 이왕 쏠 거, 제대로 쏴 주시지?”





예원이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며 바나나 우유 두 개를 계산대 앞으로 가져갔다. 계산이요! 경쾌하게 말한 후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을 내밀었다.





사이좋게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꽃아 마시며 수다를 떨며 하교를 했다. 먼저 집에 다다른 예원이를 배웅해준 후 핸드폰으로 After Like 안무영상을 보며 집에 갔다. 이왕 하는 거, 사소한 안무 디테일까지도 꼼꼼히 외워 정확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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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





다 마셔 텅 비어버린 바나나 우유 통을 빨대로 힘껏 빨아들이며 집에 도착했다. 가방과 외투를 벗어두려 내 방으로 가는데, 어쩐지 우리 집이 시끄럽다. 회사 간 아빠를 제외하곤 엄마 뿐일 텐데. 아, 나 오늘 연습하느라 늦게 왔지. 김도준도 와 있겠다. 김도준 성적이 올랐나? 아까부터 엄마의 목소리가 신나 보인다.






“뭐야, 왜! 무슨 일이야!”






방에 잠깐 들러 가방을 내려두고 거실로 재빨리 행했다. 저렇게 재미있어 보이는데 내가 빠질 수 있나. 미끄러지듯이 복도를 가로질러 거실에 다다르자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쇼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엄마랑 김도준.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전정국…?”





미친. 얘가 왜 우리 집까지. 게다가 날 향해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누가 보면 여기,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라 전정국 집인 줄 알겠다. 아니, 굳이 제 3자까지 끌여들이지 않아도, 내 눈으로 직접 이 상황을 봐도 이곳은 전정국의 집으로 보인다. 난 초대받았다, 와 같은 이유로 이곳에 서 있는 거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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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이거 너한테 전해주라고 하셔서.”






그렇게 말하곤 전정국은 옆에 내려뒀던 가방을 뒤져 회색빛 프린트를 나에게 내밀었다. 어쭈, 가방까지 내려뒀어, 아주?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아주 작은 보폭으로 전정국에게 느릿느릿 다가가 검지와 중지 사이로 전정국이 내민 프린트 끝을 잡았다. 그리곤 낚아채듯이 휙, 끌어들여 무슨 프린트인지 확인했다.





‘제 17회 서울중학교 졸업식 무대 참가서.’






아마도 졸업식 무대 신청서인 것 같다. 내 짐작이 전정국에게도 들리기라도 했는지





“졸업식 무대 때 참가하려면 저 참가서가 있어야 한다더라. 대표인 너만 쓰면 되고. 또… 검정색 볼펜으로 써야 한다는 거, 알지?”





라며 왼손 검지를 들어올려 무언가 대단한 사실을 알려주는 듯이 행동했다. 게다가 마지막 말은 또 무슨 의도일까? 16년이나 살면서 저런 참가서를 한 번이라도 안 써본 줄 알고?



쏘아보는 내 눈빛을 느꼈는지 전정국은 다시금 입을 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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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 잘못 걸어두고 납치범이라고 하는 사람이라, 모를 줄 알았지. 기분 나빴다면 미안.”





미안함은 커녕 당당한 느낌만이 전해지는 저 말을 들은 후, 난 지금 당장이라도 깜깜하고 어두컴컴한 산 속에 들어가 있는 힘껏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걸 못한다면 전정국의 기억을 지워버리던가.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전정국 자체를 내 인생에서 싹 깔끔히 지워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