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의 열기가 가득한 이곳. 퍼플색과 바이올렛색의 과잠들이 온갖 포차와 푸드트럭을 점령하고, 스탠드 마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여기는 곧 있을 화양전이 펼쳐질 목동 야구장이다. K대와 Y대 사이의 연고전이 있다면, 국내에서 2등가라면 서러운 화연 대학교와 양화 대학교 사이의 화양전 역시 그 인기가 만만찮다.
두 대학교는 국내 순위도, 위치도, 이름까지도 비슷했지만 누가 뭐래도 둘 사이의 경쟁심을 불타오르게 한 건 봐로 과잠의 색이다. 화연대는 퍼플색, 양화대는 바이올렛색으로 이정도면 학교장들끼리 맞춘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비슷한 색상에 학교간의 유대감은 박살난지 오래였다.
그래서일까, 올해 처음 열리는 화양전에 참가한 학생들은 서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응원전 만큼은 쟤네를 이겨버리겠다." 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와... 사람 진짜 많다."

"잘못 하면 길 잃겠는데?"
퍼플색의 과잠을 단단히 잠가 맨 채 스탠드로 걸어들어오는 한 사람. 바이올렛 무리를 뚫고 퍼플존에 안착한 이 학생은 화연대의 김여주였다. 소문에 의하면 입학 후 번호만 10번 이상을 따였다고. 성적도 놓치지 않아 웬만한 학생들이 갈려나간 극강의 과제와 시험에도 살아남은 그녀의 학점은 유명세를 타기에 충분했다.
한편, 그런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은 또 한 사람의 유명인이 있었으니.
"뭐야, 왔네? 시끄러운 거 싫다고 안 온다더니?"

"그냥 심심해서 와봤지. 할 것도 없는데."
"뺄 때는 언제고 되게 자연스럽네. 앉아 자식아."
바이올렛존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 학생은 연화대의 김석진. 613:1의 확률을 뚫고 교과전형으로 최초합, 결국 장학금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인물이다. 과탑은 따먹은 당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성적과 어우러진 잘생긴 외모. 신은 언밸런스 하다는 말의 선구자였다. 과 내에서는 아이돌 급의 인기와 함께 팬덤까지 있다나 뭐라나.
두 사람의 등장만으로 관중은 이미 한차례 술렁였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마추어 소설가들은 이미 그 둘을 엮어대며 본인에게 오지 않을 CC에 대한 대리만족을 펼치기도 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외모에우수하기 그지없는 성적까지, 그야말로 엄친아 엄친딸의 정석 같은 둘이었으니 사귀지 않고서야 배기겠는가. 한 가지 흠이라면 둘이 같은 학교가 아니라는 것? 학교부심이 뛰어난 화연대 양화대 학생들의 설렘에 브레이크를 건둘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관중은 더더욱 빽빽이 들어찼고, 정말 이러다 숨이 막혀 죽겠다 할 때쯤 모두가 기다리던 응원전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로 어깨를 붙잡고 원을 그리며 한껏 몸을 흔들어댔다.
"꺅!!! 야 어지러워!!!"
"조용히 해 그냥 흔들어!!!"
"아 진짜 미쳤나봐 김여주!!!ㅋㅋㅋㅋ"
여주는 그중에서도 가장 격하게 움직이며 응원전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언뜻보면 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곳은 딱 질색할 것 같지만, 누구보다 활발하기 그지없는 여주는 이미지 따위 버린지 오래였다. 그렇게 그들은 응원가가 끝날때까지 이명이 올 정도로 축제를 만끽했다.
수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어느덧 응원전까지 마무리 되며 2022 화양전도 막을 내렸다. 사람이 가득 찼던 스탠드는 어느덧 어둑어둑해져 자리를 정리하는 몇몇 사람들만이 남아있었고, 여주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축제의 열기에 매우 더워 벗어놓은 과잠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던 것이었다.
"김여주, 빨리 와!! 술 마시러 가게!!!"
"잠시만 내 과잠 없어졌어!!!"
마음이 급해진 여주는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전봇대가 고장이 났는지 자꾸만 깜빡이는 탓에 핸드폰 플래시에 의존해 과잠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여기있다! 찾았어!!"
다행히도 금방 과잠을 찾은 여주는 친구들에게로 돌아갔고,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는 웬 남자가 찾아왔다.
"야, 거기도 없어?"
"...응. 없네."
아마 여주처럼 과잠을 잃어버려 찾고있던 학생임이 분명했다. 뒷머리를 헤치며 작은 한숨을 내쉰 그는 닥치는 대로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다하다 풀숲까지 들여다 본 그는 한 개를 더 시켜야 하나 고민까지 할 지경이었고, 어느새 해는 저물어 공연장에는 그의 친구들을 제외한 사람 한 명 없었다.
"야 없으면 새로 하나 사!!!"
"그게 얼마나 비싼데!! 좀 찾아봐!!!"
"으휴, 하여간 손 많이 가는 ㅅ..."
"어, 야!!! 찾았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의 손에 우연히 채인 과잠 하나. 더 볼 것도 없이 광활한 공연장에 남겨진 딱 한 개의 과잠이었기 때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집어들었다.
"내 거 맞냐?"
"이 주변엔 이거 하나 밖에 없는데, 네 거 맞겠지 뭐."
"흠... 그런가. 아무튼 고맙다."
"됐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빨리 안 가면 자리 다 찬다."
그렇게 2022 화양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술을 진탕 마신 여주는 자취방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친구들이 택시를 태워보내줘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주인 댁의 개집에 들어가 잘 뻔 했다.
"아으... 머리야..."
몰려오는 두통을 뒤로하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자 그제야 살만해졌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여주는 해장국을 포장해오기 위해 주섬주섬 옷을 걸쳤다. 마음 같아서는 자취방에서 꿈쩍도 하기 싫었지만, 배달료가 만만치 않아 가난한 대학생에게 배달은 사치였다.
확연히 쌀쌀해진 날씨에 반팔 차림으로는 춥겠다 싶어 후드집업에 몸을 쑤셔넣고, 혹시 모를 추위에 대비해 과잠까지 단단히 챙겨입고서 집을 나선 여주. 그러나 그녀는 집을 나서자마자 경악 할 수 밖에 없었다.
"미... 미친..."
"이거 내 과잠 아닌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