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실종

02 사고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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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사고여름

여름실종








여름은 말이 끝나자마자 깨달았다.


아, 나 지금 망했다.

교실 안 공기가 묘하게 멈췄다. 명재현은 입을 벌린 채로 여름과 김운학을 번갈아 봤고, 아이들 몇 명은 웃음을 삼켰다. 누군가는 “뭐야?” 하고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아예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렸다. 여름은 아무것도 안 들렸다. 귀 안쪽에서 매미 소리만 울렸다.


쨍, 째앵—.


아, 제발 그만 좀 울어.


“아, 아니 그게…!”


여름은 급하게 말을 덧붙이려 했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서 다음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관심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냥—
그냥 얼굴이 궁금했던 거라고 말하려 했는데.
이미 늦었다.


김운학은 잠깐 멈춰 서 있었다. 놀란 표정이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여름이 판단할 수 없었다. 당황인지, 불쾌인지, 아니면 그냥 어리둥절한 건지.


“아….”


김운학이 짧게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 감사합니다.”


...ㄱ,감사합니다? 


여름은 그 말에 더 얼어붙었다.


아니, 감사할 일이 아니잖아. 이건. 이건 사고야. 대형 사고.


“어, 어어… 미, 미안—”


여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명재현이 여름의 팔을 확 잡아끌었다.


“야야야, 잠깐만 나와.”

“어? 야, 나 아직—”

“지금 더 말하면 진짜 죽는다.”


명재현은 거의 끌다시피 여름을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문이 닫히자마자 여름은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진짜로, 진심으로,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창피했다.

“야.”

명재현이 팔짱을 낀 채 여름을 내려다보았다.

“너 미쳤어?”

“…응.”

“왜 하필 ‘관심 있어’야.”

“나도 모르겠어….”

여름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냥…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명재현은 한숨을 푹 쉬더니,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근데.”

“…….”

“김운학, 생각보다 괜찮지 않냐.”

여름은 고개를 들었다.

“…어?”

“막 애들 사이에 끼어 있지도 않고. 말도 좀 느리고.”

느리다.
그 말에 여름은 잠깐 교실 안을 떠올렸다.
아이들 사이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김운학. 누가 말을 걸면 바로 반응하기보다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던 모습. 계속 손에 쥐고 있던 가방 끈.

“…몰라.”

여름은 작게 말했다.

“난 그냥… 얼굴만 보러 온 거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김운학의 “감사합니다”가 계속 귀에 남았다. 보통은 웃거나, 당황하거나, 아니면 대놓고 싫어하는데.

감사합니다라니.

“야, 그래도.”

명재현이 말했다.

“이제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겠다.”

여름은 고개를 떨궜다.

“…그게 더 문제야.”






그날 점심, 여름은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결국 국만 몇 숟갈 뜨고 말았다. 백아른은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름아… 괜찮아?”

“…응.”

괜찮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김운학의 놀란 눈, 잠깐의 정적, 그리고 그 말. 감사합니다.
여름은 창밖을 봤다. 운동장에서는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여름 햇빛이 바닥에 내려앉아 반짝거렸다.



여름은 생각했다.
왜 하필 여름에.
왜 하필 오늘에.
왜 하필 김운학이었을까.




그날 방과 후, 여름은 일부러 1학년 쪽 복도를 피해 돌아갔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집에 가는 내내 여름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김운학은, 아까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최여름은 너무 우울하고 우울해서 노래를 들으며 갔다. 이어폰은 한 쪽만 꼈다. 쌤들이 발견 못 하게 ... 

다 뭣같아- 
다정했던 사진 속 네 모습이 

다 똑같아-
이번엔 다를거라 했었던 말도


이럴 망할. 노래도 우울하다. 그래.. 그럼 뭘 들어야 할ㄲ - ,


" 저기.. " 

톡톡 - .

" 악! " 

최여름은 짧게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달아났다. 너무 놀라서 그런지 벽에 어깨를 박아서 조금 아팠다.

" ㅇ,어.. 괜찮으심까..? " 

" 아..예..? " 

김운학이다.




아 진짜..! 



" 어,어.. 괜찮아 ㅎㅎ " 

" 어잇..그... " 

김운학은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정적.

" 어.. 음.. " 

" 아..예.. " 


" 저ㄱ, - "    " 저, ! " 



....


" ㅁ,먼저 말, "     " 먼저 하십.. " 


....


" ㅋㅋㅋㅋ "  " 하ㅏㅎㅋㅋㄹㅋㅎㅋ " 


" 너 웃기다. " 

" 누님도요 ㅎㅎ " 








웃음이 멈추자, 둘 사이에 또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까의 어색함과는 조금 다른, 방금 같이 웃고 나서 남는 공백 같은 거였다.

김운학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아… 아까는, 그….”

“아.”

여름이 먼저 말을 잘랐다.

“그 얘기 안 해도 돼.”

김운학이 눈을 깜빡였다.

“…네?”

“나도.”

여름은 잠깐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

“지금 다시 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아서.”

김운학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대답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굳이 묻지 않는 것도, 억지로 웃어 넘기지 않는 것도. 복도 끝에서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방과 후라 그런지, 학교는 낮보다 훨씬 조용했다.

“저…”

김운학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이어폰.”

“…응?”

“한 쪽만 끼신 거.”

아.


여름은 다시 귀를 만졌다.


“어… 들키면 혼나서.”

“아….”

김운학이 작게 웃었다.

“저도… 가끔 그래요.”

“그래?”

“네. 선생님 시선 느껴지면 바로 빼고.”

“…똑같네.”

여름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김운학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여름은 자연스럽게 김운학을 봤다.

“무슨 노래 들으세요?”

여름은 잠시 망설였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 가사는 솔직히 좀 별로였다.

“…우울한 거.”

김운학은 웃음을 삼켰다.

“아… 그럴 것 같았어요.”

“왜?”

“그냥….”

김운학은 말을 흐리다가 솔직하게 덧붙였다.

“표정이요.”

여름은 순간 웃음이 나왔다.

“너 생각보다 말 잘하네.”

“아… 아닙니다.”

김운학의 귀가 다시 빨개졌다. 둘은 나란히 계단 쪽으로 걸었다. 발소리가 계단에 작게 울렸다. 여름은 문득, 이 장면이 생각보다 자연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 그거.”

여름이 말했다.

“교실에서.”

김운학이 멈춰 섰다.

“…네.”

“그 말.”

여름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진짜… 계획한 건 아니야.”

김운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어?”

“느낌이….”

김운학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실수 같았어요.”

여름은 피식 웃었다.

“ ㅋㅋ .. 맞아 " 

김운학도 따라 웃었다.

“그래도.”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기분 나쁘진 않았어요.”

여름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교문 앞에 도착하자, 김운학이 먼저 멈췄다.

“저… 그럼 먼저 갈게요.”

“응.”

“아.”

김운학은 한 발짝 갔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

“…응?”

“다음에….”

말끝이 흐려졌다.

여름은 기다렸다.

" 인사 정도는.. 해도 되죠..? " 

여름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

김운학은 그제야 안도한 듯 웃었다.

“그럼… 내일 봬요.”

“응. 내일.”

김운학은 손을 가볍게 흔들고 돌아섰다. 여름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노래는 여전히 우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까만큼은 아니었다.여름은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적어도 전부는 아닌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