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실 세계 ]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낡은 침대 위에 내가 누워 있었다. 기억은···,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방금 자다 일어난 사람이니까. 내 기억이라고는 한참 전에 있었던 일인 누워서 핸드폰으로 ‘T’ 웹툰을 본 게 다다. 그런데 웹툰이 좀 이상했다.
—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첫 화였는데 왜 완결이지? 아··· 머리야···. 몰라 몰라~ 눈은 왜 이렇게 부었냐. 너무 많이 잤나···.
— 여주야, 바지 빨 거니까 어서 다른 거로 갈아입어.
— 응.
— 주머니에 있는 거 다 빼고. 너 저번에도 안에 뭐 넣어서 빨았다가 내 탓 했잖아. 꼭 빼라.
— 알겠다고. 나가 있어. 내가 갖고 나갈게.
— 얼른 줘~
나는 오늘 바지에 뭐 넣은 것도 없는데 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웬 반지 하나가 떡하니 들어있었다. 조개가 박혀있는 예쁜 실반지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이게 왜 여기에 들어있고, 대체 어디서 난 건지.
— 엄마! 이거 엄마 거야?
— 웬 반지? 내 거 아닌데.
— 그래···? 누구 거지. 일단 바지 여기.
나는 엄마에게 바지를 건네준 다음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아 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말 예뻤거든. 한 번 손에 껴봤는데 마치 내 것처럼 딱 맞았어. 반지를 낀 손을 보며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 예쁘다···. 이게 어떻게 나한테 딱 맞아. 누구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깐만 쓸게요.
— 여주야! 마트 가서 빨랫비누 하나만 사와줄래?
— 또, 또 시키지.
— 얼른 다녀와줘~
— 알겠어. 가면 되잖아.
.
— 잘생겼다···.

나는 투덜대며 밖을 나왔고, 신호가 바뀌기만 기다리고 반대편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느낌이 이상했다. 잘생기고 키 큰 사람이 떡하니 서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난 그 사람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건너는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나를 한 번 슥 보더니 다시 갈 길을 갔다. 나도 마저 횡단보도를 다 건넜다. 느낌은 이상했는데 잘생겨서 그런가 보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수많은 얘기와 수많은 경험을 같이 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결코 알아볼 수 없었다. 이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잘 살펴보지 못한 게 있었다. 그 사람 손에도 나와 같은 조개가 박혀있는 실반지가 끼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와 석진 오빠가 웹툰 속에서 처음 바다에서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과 두 번째 바다에서 찍었던 네 컷 사진 모두 현실 세계에 남아있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한 순간의 기억은 전부 지워졌지만, 기록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니, 알 수 없다. 내가 기억을 되찾기 전까지는.
우리는 사랑하면 안 되는 운명이었고, 우리에게 사랑의 비극이라는 것이 처참하게 일어나 버렸다. 웹툰은 해피 엔딩이었다면, 현실은 비극 엔딩이 되었다.
[ T 제목 에피소드 ]

T : 사랑의 비극
T - tragedy : 비극 / L - love : 사랑
대문자 T를 위아래로 반전시켜 반을 가르면 두 개의 L이 만들어짐
이 작품 제목을 처음 듣고 왜 T일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셨을 거예요. 위 내용처럼 탄생한 제목이고 제목의 뜻은 마지막 완결에 밝혀졌습니다. 완결 보신 분만 알 수 있는 T 정체!!
11화에 등장했던 빨간색 아네모네꽃의 꽃말은 많지만, 전 대표적으로 사랑의 괴로움이라는 꽃말을 사용했어요. 겉으로는 정말 아름다운 꽃이지만, 그 꽃이 피어난 이유는 아름답지 않고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포스터에도 약간의 의미 부여를 했어요. T의 가운데를 막고 있는 꽃을 아네모네라고 비유하면, 꽃에 가려 보이지 않는 T 글자는 사실 갈라져 있어요. 아름다운 꽃 뒤에는 사랑의 비극이 숨어있었다. 뭐 그런 의미를 부여했어요.
정말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T 에피소드였어요. 스토리를 처음부터 확실히 하고 갔던 작품이라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작품이었고, 그런 작품을 좋아해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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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T’를 좋아해 주신 모든 독자 분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