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소년

Ep.3 딱 1달만

“너… 뭔데 자꾸 날 귀찮게 하는 거야?”


photo


하민의 목소리는 낮고, 짙은 짜증이 배어 있었다.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은 플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올려다봤다. 눈물로 번진 눈빛에도, 포기란 없었다.


플리는 숨을 고르며 일어섰다.
“하민아, 내 말 좀 들어봐.”


하민은 무심히 손목을 털고 한 걸음 물러섰다.
“뭘 들어. 너랑 나, 아무 사이도 아닌데.”


플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너 나한테… 딱, 1달만 줘.”


하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1달?”


“그래. 1달만 나랑 얘기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줘. 그 사이에 네 기억을… 꼭 찾게 해줄게.”


하민은 비웃음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기억? 너 진짜…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1달이면 돼...! 그때까지 너 아무것도 기억 안 나면….”

플리는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내가 조용히 네 앞에서 사라져줄게.”


하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사라진다고?”


photo


“응. 대신, 만약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플리는 얄밉게 웃었다.

“나 계속 네 앞에서 얼쩡거릴 거야. 진짜 지겹게 ㅎ”



하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1달 동안 내가 얻는 건 뭐야?”


플리는 잠깐 머뭇거렸지만, 곧 결심한 듯 눈을 반짝였다.
“솔직히 너한텐 아무 부담도 없잖아. 그냥 나랑 말 몇 마디만 섞으면 돼. 나 혼자 니 기억 찾아줄 거니까.”


하민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네.”


“해볼 거야. 나… 10년 동안 너만 기다렸어. 이대로 포기 못해.”


하민은 짧게 웃었다.
“진짜 미친 애구나, 너.”


플리는 차갑게 식은 눈빛에도 기죽지 않았다.
“그래, 나 미친 애야. 1달... 그거면 돼. 응?”


둘 사이에 짙은 정적이 흘렀다. 체육관 문을 향해 걸어가던 하민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깊은 눈으로 플리를 바라봤다.

photo


“…좋아. 대신, 딱 1달이다.”


플리는 눈을 크게 뜨며, 잔뜩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진짜로 받아들이는 거지??!!”


하민은 피곤한 듯 시선을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응. 1달. 그 이상은 없어.”


플리는 눈물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하민아… 고마워….”


하민은 다시 체육관 문으로 걸어가며 툭 던졌다.
“그리고 1달 지나서도 똑같으면… 진짜로 얼쩡거리지 마라.”



“...알겠어.”



“1달만에 널 돌려줄게. 약속이야.”
플리는 두 손을 꼭 쥐며,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적막한 체육관 안에서 플리의 눈빛만은 끝없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