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하민은 이상하게도, 플리가 옆에 있는 게 익숙해져갔다.
처음에는 귀찮기만 했던,
이젠 매일같이 들려오는 그 애의 목소리
“하민아!”
자꾸 말 걸고, 웃고, 따라오는 그 존재가…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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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아, 오늘은 음악실에서 기타 소리 나더라? 누구지?”
"음... 모르겠는데,"
"하민이 너도 기타 열심히 쳤었잖아 ㅋㅋㅋ"
“내가? 기타를?”
“응! 장난감 기타 치는 척 하면서 노래도 불렀잖아~ㅋㅋㅋ 기억 안 나?”
“…내가 왜 그런 이상한 걸….”
하민은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
플리는 그걸 보고 기뻐했다.
“오, 방금 웃었어!!ㅋㅋ 봐봐 너 원래 그렇게 잘 웃는 애였다니깐?”
“웃은 건 아니고… 그냥 네가 이상한 말을….”
“ㅋㅋㅋ 그래~~ 내가 이상한 말 한 걸로 하지 뭐?”
하민은 말끝을 흐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저 애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과거 얘기를 하지?
기억 안 난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플리는 마치 그 시절의 ‘하민’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얘기하곤 했다.
그게… 이상하게 불편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내가 정말… 저 애랑 그런 시간을 보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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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플리는 교문 앞에서 하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민아!! 같이 가자!! ㅎㅎ”
하민은 가방을 메며 담담하게 말했다.
“.... 너 진짜 하루도 안 빠지는 거냐?”
“약속했잖아~ 1달 동안은 네 옆에 있을 거라고, 왜, 싫어?”
플리는 씩 웃었다.
하민은 작게 코웃음을 쳤지만, 그 얼굴엔 어느새 예전처럼 딱딱한 표정이 없었다.
“…따라오든가.”
둘은 나란히 걸었다.
평소와 같지만, 어딘가 익숙한 기시감이 하민의 마음을 건드렸다.
‘…이렇게 누군가랑 걸은 적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동네 갈림길에 다다르자 하민이 말했다.
“나 오늘은 태권도장 가야 돼. 먼저 간다?”
“아 맞다!! 맞네.. 아쉬워라ㅎㅎ”
"까먹은 척 하지마, 알고 있었으면서...ㅋㅋ"
플리는 멈춰 서서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니거든?! 암튼 그럼 나 먼저 갈게!! 도장 잘 다녀와~~!!”
하민은 그 모습을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야, 그렇게 뒷걸음치다 넘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빠———아아아앙!!!!!!!!!!!!
멀리서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미친 듯이 달려왔다. 플리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움찔하며 몸을 굳혔다.
그 순간,
플리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야!!!!!!! 김플리!!!”
하민의 외침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플리에게 몸을 던졌다.
그대로 플리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몸을 틀어 트럭 반대편으로 굴러냈다.
쾅!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하민의 머리가 강하게 충격을 받았다.
"ㅇ...으윽...."
플리는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숨이 멎었다.
옆에서 트럭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며, 바람이 강하게 스쳤다.
“ㅎ… 하민아? 하민아!!!”
플리는 하민 위로 몸을 숙이며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하민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의식이 흐릿해보였다.
“하민아 정신 차려봐… 제발… 흐윽… 하민아!!”
하민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플리의 얼굴을 겨우 바라봤다.
“…다… 치진… 않았지…?”
“나? 나 괜찮아!! 너 때문에… 너 덕분에… 흐윽… 하민아, 제발 눈 뜨고 있어!!!”
하민은 힘없이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네가… 위험해 보이길래… 그냥… 몸이 먼저…”
“하민아!!!! 안 돼!!!!”
플리는 울먹이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하민아!!! 정신 좀 차려봐!!!”
그 외침이 공기 중에 크게 퍼졌다.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오고, 누군가는 급히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플리의 시야엔 오직 하민만 있었다.
그의 눈꺼풀이 점점 더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플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민아… 제발… 나 아직 너한테 말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제발…”
하민의 마지막 의식이 흐릿하게 깜빡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