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세요. 당신 애니까.”

04. “마지막 규칙은.”



“규칙부터 정할겁니다.”

넓은 아일랜드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가운데 놓인 하나의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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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결혼이라는 허울뿐인 명목 하에 그냥 사는 것 뿐이니까요.”

“그렇죠..”

“첫번째 규칙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왼쪽은 제 방이고 오른쪽은 김여주씨 방입니다. 서로 각자 방은 침범하지 않는 걸로 합시다.”

“두번째 규칙은 제가 정할게요. 어.. 집에는 꼭 12시 전에 와 주세요.. 늦으시면 연락 주시고..”

“세번째 규칙은 외박은 절대 금지입니다. 결혼식 후엔 사진도 많이 찍히게 될거고 자칫하면 기사도 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조심할게요..”

열 가지의 규칙을 정했다. 마지막 규칙은 쿵 하는 심장 소리가 귀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규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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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고 2년 후, 이혼하는 겁니다.

이혼. 스물 아홉에 이혼녀 딱지.

“꼭.. 그래야만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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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 기업이 필요할 뿐 소꿉놀이 따위엔 관심없습니다.”

저 사람에겐 이 결혼도 나도 아이도.. 소꿉놀이일 뿐이구나. 조금 생생한, 그런 놀이.

“나중에.. 나중에라도.. 이 규칙은 바뀔까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겁니다. 말해뒀다시피 저는 집에 자주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부딪칠 일도 없을거고..”
“됐어요.. 알아들었어요.. 그렇게 해요..”

그렇게 종이 한 구석에 사인을 했다.


















“아가야..”

방 안에 들어와 짐을 하나 둘 풀었다.
원래 살던 원룸 만한 방에 짐을 놓다보니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느낌이 났다.
높고 푹신한 침대에 걸터 앉아 조심스럽게 배에 손을 얹었다. 천천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아가야..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환영받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래도 건강히 자라줘..”

똑똑-

“김여주씨.”
“네?”
“잠깐 나와보시죠.”




















“무슨 일이세요?”
“결혼식 말입니다. 이번달 안에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렇게 빨리요..?”
“늦어지면 좋은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는 빨리 결혼하니 좋은 거고 김여주씨는..”
“좋은 게 없죠.”
“몸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해야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알겠어요.”

숨이 막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려 몸을 움직였다.

“잠깐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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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혼식이고, 남들 앞에선 행복한 척이라도 해야하는데. 입고싶은 드레스 있습니까. 하고싶은 결혼식이나.”
“아직.. 생각 안해봤는데..”
“결혼식뿐만 아니라 웨딩촬영도 기사화 될겁니다.”

시계를 흘긋 보고는 말한다.

“남은 업무가 있어서 다시 회사로 가야합니다. 편하게 골라보고 마음에 드는 거 모두 제 비서한테 연락 해두세요. 가보겠습니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였는지 금방 밖으로 나가고 넓은 집에 웨딩잡지 여러개와 남겨졌다.

“이런 것도.. 익숙해져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