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집 사는 전 남친 TALK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다. 어제 전정국이 듣고 싶어하는 말들을 해주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나는 폰을 덮어둔 채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내가 걔랑 2년 가까이 만났으니까… 그때를 회상하니 살풋 웃음이 나온다. 전정국과의 연애는 분명 여유롭고 고급진 연애는 아니었지만 서로가 애틋해 재밌던 연애였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많이 웃던 때가 바로 그때일 정도로 나는 전정국 옆에서 많이 웃었다. 그런 내가 전정국에게 이별을 통보한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하나하나 천천히 더듬어보면 우리가 헤어질 만한 이유는 참 많았던 것 같다. 잦았던 다툼, 완벽히 달랐던 표현법, 서로보다 중요했던 자신, 전혀 알지 못했던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까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의 우리는 잘 맞지 않았다. 그때는 왜 몰랐냐, 지금은 이렇게 잘 알면서. 살짝 올려 웃은 입꼬리가 이내 다시 쳐진다. 결코 몰랐던 게 아니었다. 알면서도 외면했던 거지. 나는 전정국을 놓치기 싫다는 욕심에 하지 않아도 될 감정 소비를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었다. 가끔 지치고 힘들어도 난 행복했으니, 저것들은 이별에 대한 이유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난생 처음 욕심이란 걸 부렸던 전정국을, 미치게 사랑했던 전정국을 내가 먼저 놓은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아, 나 진짜 주책이네.“
언제부터인지 눈가에 가득 고인 투명한 액체는 점차 시야를 뿌옇게 만들곤 힘 없이 후두둑 떨어진다. 이 눈물은 전정국에 의한 나의 마지막 눈물이어야 했고, 전정국과 제대로 끝을 맺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참 울고 나서 찬 물로 얼굴 전체를 벅벅 닦아낸 뒤, 찢어진 청바지와 하얀색 반팔티 위로 검정 라이더 자켓을 걸쳤다. 마지막으로 화장대 앞에서 잠깐 머뭇댄 나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약한 바람에 익숙한 향이 섞여 불어온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얼마 안 됐어.”
“… 가자.“
놀랄 것도 없이 그 향의 주인은 전정국이었다. 2년간 맡아왔던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향이 내 주변을 감싼다. 전정국의 향은 항상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향이 마냥 슬프기만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전정국을 앞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면 전정국은 나를 따라온다. 함께 감자탕을 먹으러 갔던 날처럼 우리는 20분이 좀 넘게 나란히 걸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그날과 달리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고, 덕분에 고깃집에 도착했을 땐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어진 상태였다.
우리는 항상 먹던 대로 삼겹살 2인분과 껍데기, 맥주 세 병과 소주 두 병을 주문했다. 그 메뉴가 당연하다시피 주문을 하는 전정국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내가 다른 거 먹는다고 하면 어쩌려고 물어보지도 않고 주문을 한 건지… 그만큼 우리가 추억에 익숙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나도 전정국도 그만 그 속에서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괜히 씁쓸해져 맥주를 잔에 따르고 전정국의 잔에도 맥주를 가득 채웠다. 아, 맞다. 너 알쓰지? 갑자기 날아온 팩트에 전정국은 고기를 굽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이 정도는 나도 거뜬하거든.“
“야, 우리 여기 올 때마다 이렇게 먹었는데 너 그때마다 제정신 아니었어.”
“… 네가 잘 마시는 거라니까.“
”글쎄 네가 겁나 못 마시는 거라고요-.“
“고기나 먹어.“
전정국은 자존심이 퍽 상한 건지 입술을 한 번 삐죽이고는 잘 익은 고기를 내 앞에 놔줬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고기를 한참 쳐다보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전정국은 그새 내 말을 까먹은 모양이다. 감자탕 먹으러 갔던 날 분명 말했었는데. 우리 사이에 이런 배려는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있어선 안 된다고. 나는 잔 가득 채워진 맥주를 원샷했고 내가 잔을 내려놓자 전정국은 자연스레 내 잔에 맥주를 따랐다. 같이 술을 마실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고서.
“천천히 마셔. 그러다 훅 간다, 너.”
”그럴 일 없을 듯.“
“내가 주량 믿고 나대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특히 남자랑 마실 때는 더 조심하라고 백번 넘게 말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너랑 헤어진 지 삼개월이 넘어가는데 너는 왜 헤어지기 전과 다를 게 없는 걸까. 전정국은 본인이 그때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시선을 불판에 두고 태연하게 고기나 굽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전정국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자꾸만 전정국이 나를 챙기는 것도 이상하고 내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이상하다. 나 이제 네 여친 아니잖아.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 그제서야 시선을 내게 두는 전정국이었다.

“… 맞네. 너 이제 내 여친 아니구나.“
전정국은 쓴웃음을 보이며 불판 불을 약불로 줄이곤 입을 꾹 다물었다. 고기는 이미 다 구워져 노릇노릇한 상태였고, 잘 익은 고기를 앞에 두고도 우리는 선뜻 젓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고깃집 안에서 전정국과 내가 앉아있는 이 테이블만 정적이 흐른다. 나는 정적을 깨기 위해 맥주잔을 전정국 앞에 내밀었고, 전정국도 곧장 잔을 들어 내 잔에 살짝 부딪혔다. 술이 필요한 타이밍이라는 걸 느꼈던 건지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맥주잔을 비웠다.
전정국은 맥주 한 잔에도 인상을 찌푸렸고, 맥주로는 부족했던 나는 소주를 까 맥주잔 가득 채웠다. 토끼눈이 된 전정국은 급하게 내게서 소주병을 뺐어갔지만 소주로 가득 찬 맥주잔은 이미 내 입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마셔도 취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던 나는 속이 쓰렸고, 전정국은 소주잔에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시곤 미간을 구겼다. 너 주량 생각하면서 마셔. 난 이렇게 부어도 괜찮은데 넌 아니니까. 내가 잔을 내려놓자 전정국 역시 잔을 내려놓고서 나와 눈을 맞춰온다.
“김여주, 우리 왜 헤어진 거야?“
이제는 서로 모든 걸 털어놓을 차례였다. 각자 속에 얹혀있던 것들을 토해내고, 정리를 하든 끝을 내든 해야만 했다. 전정국과 옆집 이웃이라는 편한 관계가 되기 위해 나는 지금 여태 끌어왔던 질긴 감정들을 확실히 끊어내려고 한다. 설령 이 과정에서 너와 내가 상처를 입는다고 해도 말이다.
어우 분량 조절 완벽히 실패했서요; 이래서 톡빙은 톡으로만 얘기해야 한다니깐요. 지문 쓰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사실 이번 편에 이별에 대해 풀고 싶었는데 분량 조절 실패로 인해 다음화까지 넘어감니다🤦🏻♀️ 다덜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손팅 플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