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화.
[위기]
"최연준 일어나"
어제 연준이가 했던 말은 그냥 빈말이 아니였는지 굳이 굳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잤다.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었지만 정말 그냥 자기만 했다. 내가 건들면 죽여버린다고 지랄 했기 때문에...

"아 좀만 더 자자..여주야 어차피 방학인데.."
"그래? 난 나가야돼"
"뭐? 왜 나가! 그럼 나는"
"너도 나가야지, 그럼 계속 여기 있으려고 했어?"
"다녀와 여보..난 더 잘ㄹ"
"일어나"
넵-. 연준이가 비몽사몽한 얼굴로 일어났다. 머리에 까치집 지었네 귀엽게. 사실 오늘은 수빈이랑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사실 공부라기보다..과외? 정도
정말 과외만 할 생각이긴 하지만 연준이가 알게되면 난리 날 것 같기 때문에 말은 안했다. 어느 정도 상황 봐서 말해야지 안 그럼 공부 절대 못 해
"배고파? 밥 줄까?"
"나 아침은 안 먹어"
내 집인데 마치 자기 집 마냥 밥 줄까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근데 또 그게 스윗해서 좋다.
"연준아 내 방 침대 좁은데 잘 때 안 불편했어?"
"좁아서 좋던데? 더 붙을 수 있고"
"...변태 새끼"
"어허 변태라니. 나 아무것도 안했잖아"
괴롭히긴 했잖아!...
뒷말을 하려다 꾹 참았다. 내 방에서 자는걸 허락을 해준 내가 바보지 바보..나가서 정말 공부만 할 생각이였기에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후드티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다.

"근데 여주야 어디 가는데?"
"음..."
말 해줘야하나.. 할까 말까 할까 말..
그래도 남자친구인데 내가 뭐 하러 나가는지는 말해줘야겠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는 연준이에게 작게 대답했다.
"수빈이 과외 해주러"
"푸읍-"
"!..야! 괜찮아?"
콜록콜록-, 물을 마시던 연준이가 그대로 다시 내뿜었다.아니 왜 이래 얘가!.. 등을 두들겨주며 연준이의 상태를 살폈다.
"...내가 아는 최수빈?"
"응 최수빈.."
"안 가면 안 돼?"
"..."
이럴 줄 알았어.. 쉽게 허락해줄 연준이가 아니지. 그래도 이건 연준이랑 사귀기 전부터 했던 약속이라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며 연준이에게 사과를 하자 잠시 고민하던 연준이가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 여주야. 내가 방금 생각해봤는데 수빈이보단 내가 잘생긴 것 같아"
"갑자기?"
아니 얘가 무슨 말을 하는거야.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귀여운 연준이 때문에 씨익 웃으며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집에 있을거야?"
"응 이따 데리러 갈까?"
"얌전히 집 잘 지키고 있어 끝날 것 같을 때 연락할게"
"다녀와 여주야"
쪽-
아침부터 뽀뽀바람이 들었다.
***

"쉬었다 할까요?"
"그래 좀 쉬자 눈알 빠지겠다."
우리가 공부 할 장소는 동네 카페였다. 난 아메리카노, 수빈이는 덩치와 안 맞게 딸기 요거트 스무디를 하나씩 시키며 말 없이 공부 중이였다.
"누나 오늘 화장 했어요?"
"입술만 발랐어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아 뭔 또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에요 ㅋㅋㅋㅋㅋ"
"진짠데? 누나 진지하다.."
그렇게 말하며 지갑을 들고 일어섰다. 카운터로 가 제일 달아보이는 조각 케이크를 사서 가져오니 수빈이가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나 그동안 너한테 너무 얻어 먹은 것 같아서 사주는거야"
"그건 누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거죠"
"..큼, 하여튼 내가 많이 얻어 먹은건 맞잖아!"
순간 어색해질 뻔한 수빈이의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아직도 나한테 미련 있는건 아니겠지 설마? 에이..
그래, 아무 감정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 하는 거겠지
***
"데려다줄까요?"
"아니 연준이가 데려오기로 했어."
"아.. 그래요?"
"수빈이 오늘 고생 많았어 또 모르는 문제 있으면 연락해"
벌써 해가 저물었네. 카페에 얼마나 있었던거야.. 연준이 혼자 집에서 심심했겠다. 지금쯤 오고 있을텐데
"누나 잠시만"
"응? 왜 수빈아"

"연준이 형 아니였으면 저랑 만날 수 있었어요?"
"그게 무슨.."
수빈이의 질문을 곱씹으며 무슨 뜻인가 생각하니 이건 고백 아닌 고백이였다.
"초반에 누나가 연준이 형 엄청 싫어했잖아요 그래서 둘이 사귄다고 했을 때 되게 놀랐어요. 누나랑 안 어울리는 사람 만난 것 같아서"
"수빈아 그건-"
"누나 제발 .. 누나가 너무 좋은 걸 어떡해요."
"..."
"..다시는 이런 말 안 할테니까 한번만 안아봐도 돼요?"
"야..."
수빈이가 조금 울먹 거리는 것 같았다. 원래 이런 애는 아니였는데 ... 자꾸 애 처럼 구는게 지금 진짜 절실하구나 느꼈다.
선뜻 대답 할 수가 없어서 입술만 달싹이고 있었는데 수빈이는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나를 와락 - 끌어안았다.
"!...."
"제가 많이 좋아해요"
"저기..수빈아, 나,나는"
"제가 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한번이라도 저 봐줄거에요?"
"이건..아닌 것 같아.. 나 좀 놓아줘"
수빈이의 가슴팍을 힘껏 밀었지만 꼼짝도 안 한다. 자꾸 나에게 구애하는 수빈이가 안쓰러우면서도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은..이젠 진짜 끝이구나 수빈이랑.
".. 제가 하는 말 진심이에요"
수빈이가 나를 놓아주며 말 했다. 이미 너도 알고 있겠지 그럴 일은 없다는거.
그때였다.
"...지금, 뭐 하냐 둘이"
"..연준ㅇ,"
퍽-
순식간에 연준이가 수빈이에게 달려들었다. 너무 놀라 들고 있던 가방도 떨어트리고 둘을 떼어내려 했지만 둘 다 꼼짝도 안 했다.
"최연준 너 지금 뭐 하는거야!"
"...하"
결국 소리를 지르자 폭행을 멈추던 연준이가 나를 쳐다봤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럴려고 내 연락도 안 본거야?"
"최연준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좀-"
"시발 어떻게 진정을 해 이 꼴을 보고!!"
어떡해...진짜 화 났다. 연준이가 소리를 지르자 바닥에 쓰러져있던 수빈이가 힘겹게 일어나더니 내 옆에 섰다.

"내가 일방적으로 안은거니까 누나한테는 뭐라 하지마요"
"...지랄을 하네"
"연준아!..,"
"나 지금 네 얼굴 보면"
진짜 화낼 것 같으니까 말 걸지마. 연준이가 그 말을 한 뒤 가버렸다. 잡아야 하는데.. 따라가야 하는데
괜히 눈물이 흘렀다. 수빈이가 당황하며 내 눈물을 닦아주려 하자 손을 탁 하고 쳐냈다.
"...나 갈게. 연락하지마"
"누나!.."
힘 없이 떨어진 가방을 집어들다 옆에 널부러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뒤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꽃다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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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까 분량이 적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