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길들이기

미친개 길들이기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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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개 길들이기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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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귀에 속속 박히던 국어쌤의 수업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여주는 맥없는 한숨을 푹 쉰다. 아무것도 머릿속에 새겨지지 않는 이유는 불과 하루 전, 나여주의 엄마가 한 중대 발표 때문이었다. 엄마의 그 결정이 나여주의 18년 인생의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킬 일이었단 걸. 나여주는 예상치 못했다.


시간을 되돌려 24시간, 하루 전. 오늘도 우여곡절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선 여주가 엄마에게 이끌려 소파에 착석하게 된 건 한순간이었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할 말이라, 이건 분명히 중대한 발표라는 걸 눈치챈 나여주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할 말이 뭐냐고 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는 여주에 마냥 어리기만 했던 딸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자랑스러운 딸이 자신의 결정을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에 다른 건 다 생략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만 말했다.




"모레부터 미국에서 사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 같이 살게 될 거야. 한국에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다고 하니까, 딸이 잘 챙겨주고"

"잠깐 머무는 게 아니라 같이 산다고...?"

"한국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는데, 제일 친한 친구인 내가 받아줘야지. 마침 남는 방도 있고 하니까"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아주 잘한다고 하니, 이 기회에 영어 잘 배우렴.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좋아하는 엄마를 보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어진 여주였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엄마 말대로 그 아이한테서 영어나 잘 배우자는 다짐을 굳게 한다. 이 다짐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리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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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시간, 새벽 미국 라스베이거스. 클럽에서 실컷 즐기면서 놀다가 쥐새끼 마냥 살금살금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태형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현관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엄마에게 꼼짝도 없이 붙잡혔다. 여차하면 저 야구방망이가 자신에게 날아올 수 있다는 걸 직감한 그는 공손한 자세로 조곤조곤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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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 I'm sorry. I won't be late again, so please put down that baseball bat thinking you're saving your son."

(엄마. 잘못했어. 다시는 늦게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제발 아들내미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면서 그 야구방망이 좀 내려놓으면 안 될까?)

"쏘리하고 앉아있네. Didn't you say that before? At that time, I definitely told you that if you crawl in one more time late, you'll die."

(쏘리하고 앉아있네. 그 말 전에도 하지 않았니? 그때 내가 분명히 한 번만 더 늦게 기어들어 오면 죽는다고 했을 텐데.)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자, 저 야구방망이에 맞아 반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태형은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서 빌었지. 그렇지 않으면 조금 전의 상상이 현실이 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진짜야. 못 미더우면 엄마가 하라는 거 뭐든지 다할게. I'll do whatever you want, please."

(이번에는 진짜야. 못 미더우면 엄마가 하라는 거 뭐든지 다할게.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제발.)

"Anything I want?"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그 무엇보다 간절하게 사정하는 태형을 본 엄마의 얼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띠는데. 그 미소를 본 태형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입에서 나오는 게 뭐든 무조건해야겠구나, 오늘이 마지막이 되기 싫으면.

엄마의 주머니에서 꺼내진 무언가가 태형의 손에 쥐어진다. 자세히 보자 다름이 아닌 한국행 비행기 티켓. 뒷말을 듣기도 전에 김태형의 머릿속에는 상상에 나래가 펼쳐져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렇게 말 안 듣고 사고만 치는 아들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무심하게 한국에 보내시는 엄마. 버리지 말라고 울면서 비는 자신이.




"Stay at my friend's house for a year and come back as a person. There is a girl your age, so teach her English well."

(일 년 동안 내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사람 되어서 돌아오렴. 네 또래 여자아이도 있다고 하니, 영어 잘 가르쳐주고.)

"Son, this is my last chance to give you. 알았지?"

(아들. 이건 내가 너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야. 알았지?)

"알았어. 엄마"

엄마의 말의 숨겨진 의미는 이번에도 실망 시키면 그때는 정말로 엄마와 아들의 연을 끊겠다는 으름장이었지. 하마터면 오늘이 숨을 쉬는 마지막 날이 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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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대망의 날이 밝아오고. 쉬는 날이라서 같이 마중을 나가자는 엄마에 이끌려 공항에 도착한 여주. 나의 소중한 주말의 아침잠을 못 자게 하다니, 엄친아인지 뭔지 가만두지 않겠어. 초면이든, 구면이든 신경을 쓰지 않는 나여주는 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는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서 게이트를 찾는데 한참 헤매었다. 아침잠을 못 잔 것도 분해 죽겠는데, 반도 안 채워지는 체력으로 돌아다니니까, 화가 쏫아올랐다.

반 좀비 상태로 겨우겨우 게이트를 찾았는데, 예상치도 못한 급한 일이 엄마에게 생겨서 택시비를 주시고는 이 넓은 공항에 나를 혼자 덩그러니 남겨두고 가버리셨다. 혹시라도 못 알아볼 수도 있다고 하셔서, 엄마는 'Welcome Korea, Vance" 라는 문구를 쓴 큰 도화지를 준비했다. Vance, 반스. 그 아이의 영어 이름이라고 했다. 뭔 소리인지는 1도 모르겠지만.

그 뒤로 다리가 빠지도록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뭘 하길래 이렇게 안 나와. 화가 슬슬 분노로 바뀔 때쯤 키가 훤칠한 금발 남자가 걸어와 나여주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는 살짝 웃어 보이면서 하는 첫마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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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Pumpkin?"




펌킨...?!!! 지금 처음 만난 미친놈한테 호박이라는 소리 들은 거임...???

이런 미친놈이라고는 말 안 했잖아...!!

이건 미친개 김태형과 매운맛 나여주의 질긴 인연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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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 못해서 번역기를 돌리니, 틀린 부분은 귀엽게 넘어가주세요🙈💜 미친개 길들이기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