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길들이기_6
© 2025 방탄내사랑 All right reserved살면서 나여주의 나쁜 예감은 빗나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의 (종교 없는) 나여주는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님 세상에 있는 모든 신님 제발 김태형이 다른 반에 배정되게 해주세요' 하며 빌었다. 평범하고 조용한 학교 생활을 원하는 나여주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김태형이 최대한 자신과는 멀리 있었으면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간곡했던 나여주의 소원은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결국에는 그토록 떨어지고 싶었던 태형과 같은 반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너랑 같은 반이라서 다행이다."
"ㄷ,다행이긴 뭐가 다행이야." [설렘지수 50% 상승]
"그래야 단어 몇개라도 더 가르쳐주지."
"........." ((눈으로 욕함)) [설렘지수 50% 하락]
교무실에서 낮은 목소리로 티격태격하는 나여주와 김태형. 그런 두사람을 보는 선생님들은 마냥 귀엽기만 한다. (한창 좋을 나이다~)
"자, 수업 끝나고 여주가 태형이한테 학교 소개 시켜주면 되겠네."
천정벽력 같은 소리에 여주의 포커페이스가 와르르 무너질 뻔 했지만, 세상 인자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런 여주를 본 선생님은 '우리 착한 여주, 이쁘기도 하지' 라는 생각을 했다지. 이런 걸 이중인격이라고 하던가.
"네, 선생님."
"그래. 태형이 한국이 낯설고 모든게 다 어색할텐데, 여주랑 친해서 다행이네."
"그러게요. 하하."
친하긴 개뿔, 아주 원수가 따로 없는 사인데요.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우리의 나여주양은 사회생활 만렙의 미소를 장착하고서 속으로 삼켰다. 영어 빼곤 꽤 모범생인 여주는 선생님한테 찍히기 싫었던 것이었다. 순딩한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 라는 속담처럼 자꾸 속 긁으면 왕하고 물어버릴 수도 있는 게 나여주였다.
"그럼 여주는 먼저 반으로 가 있을래? 태형이한테 몇 가지 더 전해줄 전달사항이 있어서."
예의 바르게 인사까지 한 여주는 반으로 향했다. 반에 들어서자마자 현서에게 (나여주의 친구) 이끌린 여주는 순식간에 의자에 착석되었다.
"여주야, 여주야. 너 그거 들었어?!"
"무슨 얘기길래 이렇게 호들갑이야."
난리부르스인 현서 앞에서 텀블러를 꺼내 세상 태평하게 물을 마시던 여주는,
"우리 학교에 완전 존잘 남학생이 외국에서 전학 온대!!"
"ㅋ,쿨럭...!!"
누가봐도 태형을 의미하는 말을 꺼내는 현서에 물을 잘못 삼켜 사레에 들었다.
"야야, 괜찮아?!"
"ㅇ,어. 괜찮아."
"하긴 암흑같은 우리 학교에 빛나는 존잘남의 등장이라니! 놀랄만도 할 일이지."
"ㄱ,그렇지..."
차마 그 존잘남이랑 같이 동거를 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일 지라도. 절대 그 누구도 김태형이랑 한집에 산다는 사실을 알아선 안 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파국으로 치닫는 전개가 눈앞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건 절대로 안 돼지.
김태형에게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톡을 보내려 했지만, 그랑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아... 전화번호 교환 안 하고 뭐했니, 나여주야.'
"우리 반으로 전학 왔으면 좋겠다. 내년이면 자유란 없는 고3인데, 연애는 못하더라도 눈호강이라도 마음껏 하게."
"ㅎ,하하... 고3... 현서야, 나 영어 어떡하냐..."
"괜찮아. 여주야, 지금부터라도 영어 과외 선생님한테서 과외 받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그 영어 과외 선생님이 김태형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필이면 같은 반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질풍노도의 시절에 영어 공부를 안 한게 후회스러웠지만, 깨진 그릇 이 맞출 수 없듯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걸 알아 죄없는 머리만 쥐어뜯을 뿐이었다.
"그..그렇겠지..?"
고개를 숙인 채 자기자신을 자책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손에 느껴져 오는 따뜻한 온기에 여주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Don't hurt yourself."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제발 아는 척 하지 말라고 간절하게 부탁한 개나리.. 아니 금발의 김태형이 자신의 손목을 감싸쥐고 있었다.
비하인드_
몇일 전, 미국에 계신 태형의 부모님 대신 보호자가 된 여주의 어머님은 태형의 전학 수속을 밟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아이고, 여주 어머님이 학교에는 무슨 일로 걸음하셨어요."
"저의 둘도 없는 친구의 아들 입학 문제로 찾아뵙게 되었네요."
입학 절차에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준비해서 가져오신 여주의 어머님. 서류를 모두 확인하신 교장 선생님은 태형을 2학년 7반에 배정하게 되는데, 그걸 본 여주의 어머님은 교장 선생님께 부탁을 한다.
"교장 선생님, 태형이를 우리 여주와 같은 2학년 4반으로 배정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여주 어머님,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2학년 7반 학생 수가 4반보다 확연히 적어서."
"태형이가 멀고 먼 곳에서 한국까지 와서 얼마나 낯설고 힘들겠어요. 아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여주 밖에 없는데, 교장 선생님 제발 부탁드릴게요."
"하... 그렇게 부탁드리시니, 어쩔 수 없겠네요. 김태형 학생은 여주 학생과 같은 2학년 4반에 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그렇게 여주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태형과 같은 반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