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묘사가 다소 있습니다.
승철은 제 앞에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발치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그 옆에는 엎어진 채로 통곡하는 여자가 있었다. 어머니인것 같았다. 사람들이 다들 눈시울을 붉히며 임산부의 시체를 가져갔다. 그래, 이게 광주였다. 승철은 막막함에 머리를 쓸어넘겼다. 회색빛 머리는 힘없이 바람에 휘날렸다. 오는 동안 끔찍한 것을 너무나도 많이 봐버렸다. 죽어가는 시민들, 승철은 그 속에서 바쁘게 수빈을 찾았다.
“제발 돌아가요!”
경찰이 소리쳤다. 앳된 얼굴을 보아하니 경찰이 된 지 얼마 안된 사람인듯 했다. 경찰은 거의 울먹이면서 소리 질렀다.
“시위하면 공수부대에게 다 뒤져요, 제발 돌아가요!”
경찰이 그렇게 애원했음에도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경찰은 이제 울면서 시민들에게 매달렸다. 그에게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처절함이 보였다. 승철은 문득 수빈이 생각났다. 조금 선득하게 느껴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승철은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승철이 막 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앳된 경찰을 일으키려던 참이었다.
“이 버러지가!”
승철의 손에서 경찰이 힘없이 공수부대 군인의 손으로 끌려들어갔다. 그 청년에서 승철은 수빈의 얼굴이 보였다. 군인들은 총으로 그를 마구 내려치고 징이 박힌 신발로 걷어차며 욕지거리를 했다. 아이고메, 어찌아쓰까! 사람들이 탄식을 뱉어냈다. 계속해서 행진하던 시위대도 멈추었고 바쁘게 지나가던 시민들도 고개를 돌렸다. 그 앳된 청년이 거의 맞아 죽을 무렵에 저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계엄령을 폐지하라! 전두환 대통령은 물러나라!”
경찰의 또래인 듯한 청년이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거리를 내달렸다. 희끄무레한 점 같았지만 승철은 거기에서도 보이는 수빈의 얼굴을 힘겹게 지워냈다. 경찰을 향한 발길질이 멈추었다. 계엄군들은 모두 그 태극기를 두른 청년을 응시하고 있었다. 철컥, 하고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몇몇 사람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진 경찰을 등에 업고 병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승철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 나라의 군인이란 작자들은 어떻게 같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경찰을 개처럼 팰 수 있는 것일까. 후들거리는 승철의 발 아래에 청년 경찰이 흘린 피가 묻어 있었다. 승철은 눈을 감았다. 총소리와 함께 태극기를 두른 청년의 몸뚱아리가 쓰러졌다. 승철은 재빨리 택시에 타 시동을 걸고서 청년의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미약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으로 보아 숨은 붙은 것 같았다. 승철은 청년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택시에 태웠다.
“너 이 새끼는 뭐야!”
계엄군 하나가 승철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기세에 승철은 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그때 제 택시의 조수석에 실려 있는 청년이 생각났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리는 입을 열어 뜨문뜨문 말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사람이 다쳤잖어. 벼, 병원엔 데려가야 할 거 아니여.”
“뭐? 병원? 이 새끼 빨갱이인거 몰라?!”
“빠, 빨갱이면 태극기를 왜 몸에 두르고 있겠어? 그리고 아무리 빨갱이어도 사람은 죽이면 안되는거여!”
“너 저 빨갱이하고 한패지? 그래서 택시 가져 온거지?”
“난 빨갱이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여!”
시끄러워! 군인이 거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쳤다. 모든 이목이 그쪽에 집중되었다.
“뭐야.”
군인 하나가 더 다가왔다. 승철과 말싸움을 하던 군인은 경례를 하더니 여전히 큰소리로 말했다.
“빨갱이 새끼를 잡았습니다! 아까 도주하던 빨갱이를 차에 태워 데려가려 했습니다!”
군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가온 그 군인은 허리춤에서 장검을 꺼냈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서슬 퍼런 장검을 승철의 복부에 꽂아넣었다. 사람들이 경악을 했다.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소리 때문이었다.
“아빠!!”
승철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상이 맺히는 순간 다른 군인이 더 다가와 칼을 꽂아넣었다. 마치 저주인형에게 하듯이 서너명의 군인들은 기다란 칼을 승철의 몸에 박았다 뽑기를 반복하였다. 수빈은 제 눈 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수빈은 아빠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한 남자가 그를 제지했다.
“아냐!! 이거 놔!! 안돼!! 아빠!! 아빠…!!”
정신차려, 이 새끼야! 너 지금 저기 가면 죽어! 남자의 말도 흐릿하게 들렸다. 마침내 승철의 몸뚱아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수빈은 기어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토록 좋아서 그토록 아꼈던 말. 그래서 끝끝내 그의 마지막까지 하지 못했던 말. 수빈은 남자의 억센 손에 붙들린 채로 흐느꼈다.
“아직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아무 말도 못했는데…!”
그날 광주, 해가 높이 떠있던 그 봄의 낮에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