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은 그 길로 거리에 나섰다. 계엄군이 없는 거리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낯설었다. 주택단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선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잠시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소리쳤다.
“여러분!!”
이제 무기를 들어야 할 때인듯 합니다! 아까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임산부를 총으로 쏴대고! 할머니의 머리를 밟아 두개골을 부수며! 쓰러진 이를 옮기려는 외지인조차 살해하는 그 극악무도한 자들 말입니다! 언제까지 저들이 우리 이웃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어째서 다들 조용한 겁니까! 사람이 죽었습니다! 셀 수도 없는 아까운 생명들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형제들이여, 자매들이여, 어머니들이여, 아버지들이여! 일어납시다! 함께 총을 듭시다!!
수빈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웅성거리며 모여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제일 먼저 남자의 앞에 섰다.
“그 외지인이 제 아버지였습니다.”
수빈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수빈의 어깨를 잡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평균 정도 되는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수빈을 다잡아주려는 듯 몇번이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연준은 뒤에서 그것을 지켜만 보았다.
“그러고 보니 수배지에서 본 듯 하네.”
“아…네.”
“걱정 말게. 여기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자네를 밀고하지 않을걸세.”
자신을 김배종이라 소개한 남자의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연준 또한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시민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하지마.”
연준은 M1 카빈을 받아들며 서툴게 장전을 하고 있는 수빈에게 다가갔다. 수빈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연준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연준은 입이 막힌 기분이었다. 몇번 입을 달싹이고서 그는 땅바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두 팔은 힘없이 떨군 채였다.
“이건…이건 아니야.”
“……”
“우린 계속…평화 시위를 이어나가야 해.”
저 사람들, 저렇게 무장한 사람들 중에서 이 미친 지옥이 끝나면 살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 아니다, 이 이야기는 관두자, 관두고… 횡설수설하던 연준이 수빈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마.”
“…”
“이건 그냥 우리를 폭도로 몰아갈 또다른 구실을 주는 것 뿐이야.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는거라고. 하지마, 수빈아. 응? 하지마…제발.”
수빈은 총을 내려놓고 연준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서로의 숨소리와 심장박동으로 인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수빈은 말했다.
“형.”
“다 괜찮을 거에요.”
수빈은 고개를 떨궜다.
“공원이나 갈까요? 오랜만에 계엄군도 없는데.”
“…그래. 이따 보자.”
수빈은 벤치에 걸터앉았다. 밤하늘은 어두칙칙했다. 만나기로 한 시각이 한참 넘었는데 연준은 머리통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원래대로라면 자고 있을 시간이니까. 생각보다 늦게 끝난 시민군 입단식을 생각하며 수빈은 쓰게 웃었다. 그때였다. 어두운 밤에도 돋보이는 새까만 스쿠터 하나가 다가왔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생각만 많아질 것 같아서 말이야. 드라이브 안 갈래?”
연준이 손을 내밀었다. 수빈은 기꺼이 그 손을 답고 스쿠터에 탔다. 광주 올때 유일하게 챙겨온 쓸모 있는게 이거야. 내 애마. 연준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럼 돈은요.”
수빈이 물었다. 연준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뒤에 앉은 수빈과 눈을 맞추며 씩 웃었다.
“ATM에서 뽑았지.”
스쿠터는 단번에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내달렸다. 연준은 거리가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수빈은 사정없이 제 눈가를 때리는 바람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연준을 꽉 잡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쿠터 운전법이라도 배워둘 걸 그랬다. 아악 속도 줄여요!! 속도!! 수빈이 소리질렀다. 금방이라도 황천길을 건널 것 같았다.
“에이, 이제 시작인데.”
“필요없고 속도 줄여요!! 누구 치는거 아니에요?!!”
“그렇게 모든 걸 다 걱정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거야, 인마. 기다려봐, 익숙해지니까.”
눈물을 실컷 뽑아내는 수빈과는 달리 연준은 한껏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수빈은 눈을 더 꽉 감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수빈은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빈은 조금씩 눈을 떠보았다. 모든 풍경들이 어느 인상파 화가의 붓놀림처럼 흩어졌다. 제 몸 속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수빈은 미국의 여느 젊은이들처럼 오른손의 중지와 약지를 접고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 수빈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연준 또한 중지와 약지를 접은 오른손을 한껏 치켜들고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바람이 여전히 사정없이 수빈의 눈가를 때렸지만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더 크게 소리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