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 우정

16. 희비의 교점

“아직도 안 잡혔다고?”


준현이 탁상을 쾅 쳤다. 그 옆에는 그의 옛 아내가 서 있었다.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준현의 큰 소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조금 굴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부대장은 얼떨결에 차렷자세를 했다.


“잡아와.”
“네?”
“죽여도 되고 병신새끼로 만들어도 되니까 잡아와. 잡아서 내 눈 앞에 데려와.”


준현의 주먹이 분노로 부들거렸다. 핏발 선 그의 눈은 충혈된지 오래였다.


“왜.”
“…”
“군대도 안 간 새파란 애새끼 하나 잡아오라는게 그렇게 힘들어?”


부대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부대장은 잠깐 움칫했다. 그리고 크게 대답하고서 손을 내리고 방을 나갔다. 부대장이 나가자 준현은 제 옆에 선 아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가 문제야?”


그가 대뜸 소리질렀다. 아내는 또다시 눈알을 굴렸다.


“당신이 문제지. 그럼 뭐가 문제겠어.”


준현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뱉었다. 호화롭게 살게 해줬더니 아들놈하고 도망친 주제에 뭐라고 나불거리는거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더는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준현은 의자를 내던지듯이 그녀 앞에 던져놓고 앉았다.


“당신이 망친거야. 최연준 그 새끼가 죽으면 당신 책임이라고. 당신이 그렇게 키웠으니까.”


준현이 아내의 얼굴에 대고 한자 한자 눌러 말했다.


“언제나 내 책임이지, 안 그래? 뭐? 부모 앞길을 막으니까 죽여? 부모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자식을 위해 내 삶을 던지려고 해야지 어떻게 그따위 생각을 해? 내가 그 앨 불행하게 만든건 알아. 하지만 결국 잘못된 판단은 당신이 내렸어.”
“입만 열면 내 탓이군. 그 애새끼한테 그런 것도 가르쳐줬나?”
“가르쳐줄 틈이 있어야지, 걘 모든 것에 지쳐버렸는데!”


아내가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준현은 마른세수를 했다.





수빈은 옆에 있는 총알을 쑤셔넣었다. 이제는 장전하는 것도 제법 능숙해졌다. 망설임 없이 조준한 수빈은 총을 몇발 쏘고 벽 뒤에 몸을 숨겼다. 가까이에 화염병이 보였다. 수빈은 그것들을 양손에 쥐고 멀리 내던졌다. 탱크에 불이 붙었다. 그 기세를 몰아 다들 빠르게 움직이며 총을 쏴댔다. 그래 고지가 눈앞에 보였다. 수빈은 온갖 소리들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시민군 중에 하나가 수빈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괜찮아?”


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캐한 화염병의 연기가 눈을 사정없이 찔러왔고 실탄 속에 날아드는 최루탄도 그를 괴롭혔다. 기어코 총을 떨어뜨려버렸다. 총이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앞서 가던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아요, 어서 가세요!”


수빈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떨어진 총을 집어 들고 수빈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결연한 눈빛이 연기에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보였다. 수빈은 목젖에서 울컥하는 응어리를 느꼈다.


“더는 잃지 않아.”


시민군 대장 김배종이 눌러 말했다. 그들은 다시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갔다. 배종이 태극기를 들고 제일 앞서서 달렸다. 펄럭이는 태극기가 온갖 빛으로 번쩍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그토록 염원하던 소리를 들었다.


“철수한다!”


허둥지둥 트럭에 오르는 계엄군들을 보며 모두 함성을 질렀다. 승리했다. 계엄군은 이제 당분간 광주에는 발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투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함께 소리를 질렀다. 광주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수빈의 눈에 눈물이 조금 괴었다. 최루탄이나 화염병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하얀 누군가를 보았을때는 수빈은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최수빈!!”


의사 가운을 입은 연준이 달려와 수빈의 앞에 섰다. 수빈은 은근한 보조개가 나올 정도로 웃었다.


“우리가 이겼어요.”


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눈물 나와. 고개를 젖히며 그가 말했다. 왜요, 너무 감동적이야? 최루탄 때문이거든?! 연준이 말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쉬고 수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맞아. 감동적이라서 운다, 왜!”


웃고 있는 연준의 눈이 눈물 때문에 반짝였다. 수빈은 제 눈도 그러하리라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가운 뭐에요? 의사 다 됐네.”


나름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그 말에 연준은 아예 대놓고 울어댔다.





소음이 잦아들고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가 될 무렵 연준과 수빈은 공동묘지에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묘지의 길 가까이에는 비교적 최근에 죽은 사람들의 비석이 보였다. 시위를 하다가, 혹은 전투를 하다가 죽은 사람들임에 분명했다. 연준과 수빈은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땅을 팠다. 옷이 더러워지건 말건 삽으로 묵묵히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배에 총을 맞고 죽은 어린 군인을 묻었다. 미안해, 집에 보내주지 못해서. 연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흙을 덮고 나서 들은 그 무덤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 이것은 지금까지 스러진 모든 것들에 대한 애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