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 우정

18. 연준의 이기

연준은 두 손을 맞잡고 있다가 마침내 수빈의 속눈썹이 움칫거리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절주절 기도를 늘어놓았다. 수빈이 눈을 떴다.


“야 수빈아!”
“…소독약 냄새.”


수빈이 낮게 말했다. 연준이 바로 수빈의 붕대 감긴 손을 꽉 잡았다. 심상치 않은 악력에 손이 아팠지만 저가 앓아누워있는 동안에 그만큼 걱정한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참았다. 수빈이 눈을 뜨고서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광주의 상황이었다. 시민군은 전멸하지 않았다.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으니. 그리고 그게 수빈이었다.


“최수빈 너 진짜…….”


그러나 몸이 성한 것은 아니다. 연준은 두 손을 벌벌 떨면서 수술했던 지난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최수빈은 팔다리에 화상과 허벅지에 총상까지 입어 왔더랬다. 쌕쌕거리는 목숨만 붙어있던 산송장 멀끔히 사람꼴 만들어 놓은 것도 다 최연준의 업적이었다. 수빈은 그제서야 제 팔다리가 붕대에 감싸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와. 그가 나직이 말했다. 저 진짜 죽을 뻔 했네요.


“그걸 이제 알았냐?”
“아야.”


연준이 일부러 수빈의 볼을 꽉 꼬집었다. 꼬집힌 볼을 문질거리면서 수빈은 문득, 자신의 옆에 동료들이라고는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수빈이 상체를 일으켰다. 회복이 덜 된 몸이 휘청거렸다. 연준이 기겁을 하면서 수빈을 부축했다. 형…형……왜 아무도 없어요? 수빈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연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나아서 그렇죠? 내가 늦게 일어난거죠…?”
“……”
“왜 대답을 안 해요 형…나 불안하게…….”
“……”
“왜……도대체 왜…….”


수빈이 연준의 팔을 붙잡고 와들와들 떨었다. 어떻게든 위로해주고 싶었다. 연준은 시민군의 뜻에 동의한 적은 없었지만 정의를 위해 죽어간 목숨들이란 안타깝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입이 떼어지질 않았다. 평소 자신이었더라면 뭐라 말을 해주었을텐데. 슬퍼하지 말라는 진부한 말, 혹은 제 속을 뒤집어 꺼내어 보여주며 어떤 동질감이라도 줄 수 있었을텐데. 그러나 연준은 수빈을 꽉 안고서 입을 무력하게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기적이게도, 정말 이기적이게도 연준은 수빈이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수빈이 그 사람들처럼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광주를 돌아다니는 탱크의 소리가 아득하게 났다.


“……형 나 진짜 어떻게 살아요.”
“……”
“왜 다 죽는거에요? 왜 아무도, 다 정해진 판처럼 그렇게 아무도 살아남는 사람 없이 죄다 죽어버리는거냐고! 옳은 일 하는거, 그게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힘든거에요? 왜 아무것도 안 남는건데! 왜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거야?!”
“야, 최수빈 너도 죽다가 겨우 살아난거야. 진정해.”


수빈이 멍하니 연준을 바라보았다.


“형이라면-”
“형이라면 그런 말 할 수 있느냔 뻔한 소리 하지 마. 너 지금 환자고, 환자는 안정이 필요한거야.”


딱잘라 말하는 연준에게서 왠지 벽이 느껴졌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새하얀 가운을 입은 연준의 얼굴은 그 속내를 읽어내기 어려웠다. 연준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까지 이기적이었나? 그래서 살리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얼굴들 앞에서도 덤덤하게, 너만 살아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연준은 수빈을 내버려두고 자리를 떴다.





“야.”
“왜요.”


수빈이 책을 읽고 간단한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들 괴물같은 회복력이라고 감탄했지만 연준만은 크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문에 기대어 삐딱하게 서서는 책장을 넘기는 수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끌어 수빈의 침대 바로 옆에 앉았다.


“단식투쟁이라도 하겠다 이거야?”


수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준을 쳐다보았다. 연준은 간호사가 가져다준 식판을 받아들고 수빈의 앞에 내밀었다. 어제 점심부터 아무것도 안 먹는다며? 그가 말했다. 점심은 간장양념과 참기름, 각종 채소를 넣은 비빔밥이었다. 연준은 작은 그릇에 담긴 밥을 시원시원한 손길로 쓱쓱 비볐다. 자, 아 해.


“그게 뭐에요.”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얼른 먹어야지 짜식아. 말이 많다.”


수빈이 눈을 흘기고선 한숟가락 받아먹었다. 밍밍한 간이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연준에게서 숟가락을 뺏어든 수빈은 목이 메이는데도 계속해서 입에 밥을 쑤셔넣었다. 연준은 조용히 그것을 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숨이 막히도록 밥을 욱여넣은 수빈은 천천히 우물거리며 그것을 씹었다. 그러다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고추장 없는 밍숭맹숭한 나물 비빔밥, 그것이 택시기사 아버지를 둔 가난한 수험생의 수능 도시락이었다는 것을 병원에서 알았을리 없다.


“밥이…밥이 싱거워요……”


수빈이 울먹였다.


“울면서 먹어라. 눈물은 짜잖아.”


연준이 말했다.





수빈의 눈물이 어느정도 그쳤을 때 연준은 빈 식판을 가져가면서 병실을 나왔다. 가슴이 저릿했다.  나라가 이상해서, 윗대가리들이 이상해서 아까운 청춘들만 욕본다던 할머니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모든 죽음 뒤에 떡하니 버티고 선 사람은 다름아닌 저의 아버지였다.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연준은 아버지가 있을 서울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될 일이던가? 연준이 가진 돈도 모두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었다. 연준은 무작정 달렸다. 앞도 안 보고 뛰기만 했다.

막을 방법은 없었나?
무섭다고,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다고 광주로 도망쳐 온 것이 최선이었나?
그 죽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나?
그런 내가 그애를 나무라고 궤변을 늘어놓을 권리가 있는가?
내가 사람들을 치료한답시고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하는 것처럼 위선떠는게 맞는 일이었을까?
등신같이 방관하는 것이 그렇게 혐오하는 아버지와 다를 것이 뭐지?
애초에 이 모든 일이 날 잡기 위해서 벌이는 아버지의 크고 잔혹한 게임이라면?
만일 광주에 억울한 죽음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다 나 때문인건가?

목구멍에서 피맛이 느껴지고 구역질이 밀려올 때가 되어서야 연준은 멈춰서 숨을 골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다보니 모르는 동네였다.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와서 해는 더 길어졌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도로의 한복판엔 군홧발에 짓밟힌 나팔꽃 한 송이가 시든 바람에 나풀거렸다. 연준은 그대로 주저앉아서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