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동생이 왜 거기서 나와?

6

운동장에서 나눈 대화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 그거 몰랐지? 반장할 때 네 얼굴 되게 자주 봤어.’

 

 

‘내가 아무 말이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야.’

 

 

그날 정한이 무심하게 건넸던 말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괜히 음료수 캔 하나, 초콜릿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내가 더 이상해 보였다.

 

이게 단순한 장난일까, 아니면 진짜 나를 조금은 신경 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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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교문을 들어서며 무심히 교실 창가를 올려다봤다. 정한이는 벌써 교실에 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내가 웃겼다.

 

나마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정한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느릿한 걸음, 여유로운 표정, 그리고 날 스치듯 바라보는 눈빛. 그 짧은 시선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반장, 어제 자료 정리한 거 있지?”

 

 

정한이 내 자리 앞에 와서 물었다.

 

 

“있긴 한데, 왜?”

 

 

“나중에 보여줘. 보고 싶어서.”

 

 

“뭐?”

 

 

“자료 말고, 너.”

 

 

순간 교실 안이 시끄러운 것 같다가도, 그 한마디에 모든 소리가 멎는 느낌이었다. 애들 시선이 쏠릴까 봐 괜히 목소리를 낮췄다.

 

 

“야, 애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뭐가? 난 그냥 사실만 말했는데.”

 

 

정한은 내 눈치를 살짝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이 밉지도, 얄밉지도 않고 그냥 심장을 쿵쿵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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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은정이가 다가와 슬쩍 물었다.

 

 

“너네 진짜 뭐 있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근데 왜 걔가 너만 보면 웃어?”

 

 

“웃긴가 보지…”

 

 

말끝을 흐렸는데, 마침 뒤에서 정한이 등장했다.

 

 

“반장, 뭐 먹을지 고민하지 마. 오늘 내가 줄 서줄게.”

 

 

“뭐? 괜찮아. 너 왜 자꾸—”

 

 

“네가 가만히 있으면 나도 편하거든.”

 

 

정한은 트레이를 집어 들고 앞장섰다. 그 뒤를 따라가는데,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돌아보는 그의 표정이 너무 여유로워서 괜히 심장이 더 뛰었다.

 

 

“너 진짜 왜 이래?”

 

 

내가 속삭이듯 묻자, 정한은 잠깐 고개를 돌렸다.

 

 

“왜, 헷갈려?”

 

 

“…누가 헷갈린대.”

 

 

“네가 지금 그렇게 보이는데?”

 

 

그 애의 말은 언제나 장난같지만, 묘하게 진심처럼 들렸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거라면? 하지만 동시에, 혹시 내가 혼자 오해하고 있는 거라면 어쩌지. 그 불안함 때문에 자꾸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정한이 한 발 다가오면 그걸 거절하지 못한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에 다녀오는 길, 인쇄물이 바닥에 흩어져버렸다. 허겁지겁 종이를 줍는데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함께 손을 댔다. 고개를 들자 정한이었다.

 

 

“너, 왜 이렇게 허둥대?”

 

 

“깜짝 놀라게 하지 마.”

 

 

“너만 보면 챙겨주고 싶어지거든.”

 

 

순간 숨이 막혔다.

 

 

“야,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함부로 안 해. 너한테만 해.”


그는 종이를 다 모아 건네면서 눈을 맞췄다.

 

 

“나 진짜 너 좋아하는 거 같아.”

 

 

“…뭐?”

 

 

“왜 자꾸 장난이라고 생각해? 너한테는 다 진심인데.”

 

 

가슴이 이상하게 쿵 내려앉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을 피했다.

 

그때 정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일 아침, 같이 등교하자. 내가 기다릴게.”

 

 

“굳이?”

 

 

“응. 기다리고 싶어서.”

 

 

그날 밤, 정한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일 8시 정문에서.”

 

“안 기다려도 돼.”

 

“근데 기다릴 거야.”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분명히 ‘좋아하면 안 돼?’라고까지 말한 애인데, 왜 나는 아직도 이 감정을 쉽게 믿지 못할까. 정한은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이 마음을 인정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내일 아침, 그 애가 정문 앞에 서 있으면… 나는 또 한 번 심장이 흔들릴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