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정문 앞에 서 있는 윤정한을 보고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어제 메시지를 받고도 ‘진짜 올까?’ 하고 반쯤은 의심했는데, 그 애는 정말로 거기 있었다. 교복 셔츠에 가방 한쪽 끈만 걸친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날 보자 고개를 들었다.
“왔네.”
마치 당연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왜 진짜 기다렸어?”
“그냥. 네가 오나 안 오나 궁금해서.”
정한은 내 쪽으로 한 발 다가왔다.
“근데 너 표정 왜 그러냐. 잠 잘 못 잤지?”
“네가 어떻게 알아?”
“네 얼굴 보면 다 보여.”
그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이렇게 쉽게 드러나는 사람이었나. 그런데 그 애 눈빛이 묘하게 부드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교실에 들어가자 은정이가 또 수군거렸다.
“야, 너 오늘 윤정한이랑 같이 들어왔어?”
“아니거든. 그냥 마주쳤어.”
“마주쳤는데 왜 같이 들어오는데?”
그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책상에 가방을 던졌다. 그런데 옆자리 정한이 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연 아니야.”
“…뭐가.”
“내가 기다렸거든.”
애들이 우르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야, 너 미쳤어?”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왜? 사실이잖아.”
정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교과서를 꺼냈다. 그 태도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다.
점심시간이 되자 소문은 이미 반절 퍼진 듯했다.
“야, 진짜 너네 사귀냐?”
“뭐? 아니야!”
내가 손사래를 치는 사이, 정한은 태연하게 내 앞에 앉아 급식 트레이를 내려놨다.
“사귄다고 해도 되지 않아?”
“뭐??”
“어차피 소문 나는데, 왜 아니라고 굳이?”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 정말로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니면 진심인 건지.
밥을 먹는 내내 정한의 시선이 묘하게 느껴졌다. 마치 뭔가 결심한 사람처럼. 그러다 그가 불쑥 말했다.
“오늘 끝나고 잠깐만 나와.”
“또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수업이 끝나고 교실 앞에서 기다리던 정한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며 내 손에 뭔가를 쥐여줬다.
“뭐야, 이거?”
“사탕. 누나가 줬는데, 너 줄게.”
“…이걸 왜 나한테.”
“너 먹으면 더 기분 좋아질 것 같아서.”
심장이 또 뛰었다.
“야, 너 왜 자꾸 이런 말 해.”
“너 자꾸 도망가니까.”
정한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장난으로 이러는 거 같아?”
“아니… 근데…”
“그럼 이제 도망가지 마.”
정한은 내 손에 쥐어진 사탕을 살짝 눌러 쥐어주며 말했다.
“너, 나 헷갈린다고 했지? 근데 나는 헷갈리지 않아. 너 좋아해.”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이 기다렸던 대답 같았다.
정한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가볍게 웃었다.
“생각할 시간 줄게. 대신, 너무 오래는 고민하지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