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티 나는 그 남자

25. 그냥 나랑 계속 만나요, 내가 좋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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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요.




 병원으로 이동한 후 모든 조처를 다 취하고 처음으로 윤기가 승아에게 꺼낸 말이었다. 윤기는 어떤 변명도 없이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승아의 손에 꽂힌 링거 바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승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만 해도 자신은 스토킹이 너무나 소름끼치고 무서운 일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는데 윤기는 얼마나 상습적으로 당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여성스토커라 더욱 윤기의 고통은 사람들의 눈에 잘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윤기는 죄인처럼 승아의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대신 사죄하고 있었다. 윤기 역시 피해자인데도 말이다.




- 그러지 말아요. 윤기 씨 탓이 아니잖아요….
- 아니. 내 탓 맞아요. 저 스토커는 나한테 엉겨붙은 지독한 저주고, 그 저주가 이젠 승아 씨한테까지 옮겨붙게 생겼어요. 나 같은 사람이 애초에 누군갈 만나면 안 되는 거였는데…
-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 …! 승아 씨… 내 말은… 내 말은 그게 아니라…
- 난…! 난 윤기 씨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요, 소심해서 직장 상사한테까지 친구는 있겠냔 소릴 듣던 사람이 이젠 먼저 아침인사를 해요…..!! 윤기 씨한텐 별 거 아닌 것 같을지 몰라도 윤기 씨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저주니 뭐니 그거 다 윤기 씨 탓 아니고 그 스토커 탓이니까 자꾸 윤기 씨 스스로를 매몰시키지 말라구요…!! 그냥…..! 그냥 나랑 계속 만나요, 내가 좋으면!




 승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핏대를 세우다 멈칫 크게 놀란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빨개져가고 있는 몸과는 달리 곧은 시선과 이불을 꽉 붙든 손이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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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아 씨…..




 윤기는 소심하디 소심한 승아가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어 그가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던, 사실은 듣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코 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윤기는 곧 따스히 웃으며 승아의 볼을 쓰다듬었다.




- 그럴게요. 승아 씨 말이 다 맞아요. 모든 건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고, 우리가 만나면서 서로 좋은 영향을 준 것도 맞아요. 그러니까 난 승아 씨 말대로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좋아하고 있을게요. 걱정 따윈 집어치우고, 앞으로는 내 앞에 있는 이 사랑스러운 사람 좀 안달나게 만들어보려고 해요.
- …! 계속 안달나게 해놓고…..!!
- 음.. 그건 아는데, 만족이 안 되더라고.
- 우씨…! 아픈 사람한테 할 소리예요?
- 아.. 미안해요. 싫어요?
- ! 진짜 짓궂어요 윤기 씨…
- 미안해요.




 윤기는 가볍게 승아의 이마에 키스하고는 손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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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해줘요. 응?
- 윽, 진짜...
- 안 해줄 건가?
- 왜 이렇게 사람이 능숙해요 진짜… 짜증나….
- 내가 능숙한 건가. 난 당신이 나한테서 도망칠까 봐 한순간도 안심했던 적이 없었는데. 여유로운 척, 그런 척 하는 거예요, 승아 씨.
-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것도 능숙해 보이거든요…
- 내가 어떻게 하면 믿어줄래요?
- 믿어요, 믿는데… 좋은데….
- 좋으면 좋은대로 맡겨버려요. 그냥 나한테 안기면 안돼요? 난 지금 조급해서 이대로 승아 씨 껴안고 어리광 부리고 싶거든.
- 진짜… 윤기 씨는 못 이기겠어요….




 승아는 두 손을 얼굴에 파묻으며 허락을 내렸다. 윤기는 승아를 품에 가두어 뒷통수를 만지며 등을 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