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티 나는 그 남자

26. 우리 결혼하는 상상했어요?





 승아는 결국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병가를 내게 되었고, 그동안 당연하게도 윤기와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 지내야했다. 승아는 집과 병원을 오갔으며 윤기는 회사에 내내 있었으니까. 만난지 한달도 채 안 된 커플에게는 잔인한 일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달라진 것은 있었다. 윤기가 병간호를 위해 회사를 마치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바로 승아의 집으로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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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은 잘 바르고 있죠?
- 그만 좀 물어봐요, 윤기 씨.. 잊으려해도 잊질 못하겠어요…
- 안 물어보면 까먹을 거잖아요.
-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헤헤..
-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밥 해줄게요.
- 아니에요. 나도 거의 다 나아가는데 이제 괜찮아요! 오늘은 제가 엄마한테 배운 고추장찌개 해줄게요!!
- 그럼 같이 해요. 도울 거 있음 도울게.
- 진짜 못 이기겠다니까… 알았어요.




 윤기는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씻은 뒤 재료손질을 도왔다. 자취를 한지 오래라 요리에 꽤나 능숙한 것도 승아에겐 의외였다. 귀찮아서 음식도 잘 안 챙겨먹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던 승아는 윤기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승아가 아픈 내내 죽까지 직접 끓여주고 음식을 해주었던 윤기는 솜씨가 좋았다. 승아는 완전히 일등신랑감이 따로 없다며 날티나던 윤기의 첫인상은 홀라당 까먹고 그를 속으로 칭찬했다. 윤기는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그의 도움을 받아 요리를 해나가던 승아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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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신혼 같지 않아요, 승아 씨?
- 시, 신혼.. 이요..??
- 응. 신혼이요.




 신혼이라니. 그런… 우리는 아직 애송이 커플인데 벌써부터 신혼을 상상한단 말이야…?? 부끄러워…!!! 결혼하면 이것저것 못 볼 꼴도 다 보고 할 거 다 하고….! 보수적인 승아는 혼전순결주의자였기 때문에 우습게도 신혼이란 말에 순간적으로 혼자 아주 멀고도 먼 상상까지 했고, 그 덕에 인덕션에 올라온 열이 승아의 얼굴에까지 옮겨붙고 말았다.




- 어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얼굴이 이렇게 갑자기 빨개지지?
- 무, 뭐, 뭐가요…!!! 하나도 안 빨갛거든요??
- 안 보고 그걸 어떻게 알지? 너무 당황해하니까 수상한데. 솔직히 말해봐요, 우리 결혼하는 상상했어요? 너무 좋아서 그래요?
- 그, 그래요! 부끄럽고.. 좋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요!
- 흠… 믿어줄게요.
- 아, 진짜…!!
- 알겠어요, 알겠어. 삐지지 말아요. 알잖아요, 좋아서 그런 거.
- 우씨… 고추장찌개 안 먹고 싶어요?
- 승아 씨…. 그건 너무한 것 같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 흠… 넘어가줄게요.
- 지금 나 따라하는 거에요?
- 몰라요~ 보조셰프님 냉장고에서 다진마늘이나 가져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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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셰프.




 사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윤기는 승아를 만나 부드러워졌고,(승아 한정이라는 조건이 있지만) 승아는 윤기를 만나 덜 소심해지고 있었다. 윤기는 그런 승아의 모습도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병아리가 삐약대봐야 얼마나 무섭겠는가. 진심으로 화내는 것도 아니고 본인을 따라하는 모습을 보니 윤기는 그런 승아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좋아서 견딜 수 없었다. 윤기는 다진마늘을 승아에게 건내며 승아의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 배송완료. 덤도 있어요. 싫은 건 아니죠? 이걸로 화풀어요.
- 시, 싫다뇨…. 애초에 화난 적도 없거든요…!




 승아는 양심이 찔려 볼을 만지작대면서 부정했다. 그렇게 누가 보면 요리는 언제 다 하냐고 욕했을 지도 모를 달달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둘은 간단히 상을 차려 밥을 먹었다.




- 와. 어머님도 그렇고 승아 씨도 요리 솜씨가 엄청 좋은가 봐요. 너무 맛있다.
- 다 엄마한테 배워서 그렇지 이거말곤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요. 간단한 거나 해먹는 걸요. 윤기 씨가 더 요리 잘 하잖아요. 나중에 결혼하면 윤기 씨한테 얻어먹으면서 살아야겠..




 헙. 승아는 얼마나 놀랐던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윤기가 신혼 이야기를 꺼내자 저도 모르게 진짜로 윤기와의 미래를 상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