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왔다. 여기야.”
남준은 낡은 철제 대문을 밀며 말했다. 마당엔 오래된 우물이 있고, 삐걱대는 대문 소리가 싫지 만은 않았다.
“여기가… 진짜 할머니 댁이야?”
“어. 완전 외진 데라 누가 찾아오기도 힘들어. 네비에도 잘 안 찍혀.”
지혜는 뭔가 따뜻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 안쪽에서 문이 덜컥 열리며 한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작고 구부정한 몸, 흰머리. 그리고 생각보다 단단한 눈매.
“아니—이 밤중에 누구여?!”
남준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할머니~ 나야! 남준이!”
“남준이?? 이 놈이 왜 이 밤중에 연락도 없이... 이게 뭐야!!”
할머니가 다가오며 삿대질을 했다.
“남준아! 너는 왜 연락을 안 하는 겨! 이 밤중에 연락도 안 하고 오면 어쩌자는 거여!!”
남준이 급히 웃으며 지혜 옆으로 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확 감쌌다.
“하… 할머니 왜 그래~ 내 색시잖아~ 기억 안 나?”
지혜는 흠칫했지만 얌전히 웃어보였다.
할머니가 눈을 게슴츠레 뜨시면서 물었다.
“색시라구…? 내가 언제 그런 걸 또 봤대…”
“에이~ 나랑 같이 왔던 거 잊었어? 할머니 요즘 자꾸 까먹는다니까~”
“…내가 그랬나… 요즘 좀 깜빡하긴 하지… 근데…”
할머니는 지혜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얼굴에 해사한 웃음을 띄웠다.
“왜 이리... 이쁜겨? 아이고 우리 손주며느리~ 어서와~~!”
그러고는 지혜의 손을 꼭 잡았다.
“손이 야들야들하니 고생도 안 해봤네~ 어이구 잘 왔다야~”
지혜는 당황하다가도 그 손끝의 따뜻함에 살짝 떨떠름하 웃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어서들 들어가. 내가 차 한 잔 내줄게~”
할머니는 낡은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줬다.
“이 방 써. 거기 이불 넉넉히 깔아뒀으니. 좋은 이불은 아녀도 금방 피곤 풀릴 겨.”
남준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워, 할머니.”
“에휴~ 우리 준이가 여자를 데려올 줄이야~ 눈물나네 아주~
그려 얼른들 쉬고~”
지혜는 부끄럽게 웃었다. 남준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긁었다.
할머니가 내어주신 방 안엔 커튼도 없고, 벽지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시골 냄새와 함께 따뜻한 온돌이 깔려 있었다.
남준이 이불을 펴다가 말했다.
“...갑자기 이상한 데로 끌고 와서 미안.”
“아니야. 이런 데 오니까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
“..정말..?”
“웅, 진짜 신혼 같기도 하고... ㅎㅎ”
“아... 아하하 그렇지..”
"일단 이부자리라도 펼까?"
"ㄱ..그래!"
둘은 한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웠다. 방 안엔 뻐꾸기 시계 소리만 들렸다.
지혜가 낮게 말했다.
“남준아.”
“…응?”
“내가 진짜 기억을 다 찾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그런 생각은 왜 하게 된거야?"
"그냥.. 지금도 이렇게 행복한데,
기억 찾으면 어떻게 될까... 해서..!"
"ㅎㅎ.. 걱정하지마, 지혜야"
".... 이거 내 감인데, 갑자기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만 같애"
"...."
"기분 탓인가,... 기억이 없어서 그런가"
남준은 지혜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마. 내가 쭉 곁에 있을테니깐"
남준은 말하면서, 속이 아린 느낌이 들었다.
본인의 마음이 정확히 어떤 것일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지혜는 어디선가 나는 고소한 냄새에 눈을 떴다.
“음…”
그녀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조그마한 소리들.
"아침부터 할머님이 뭐 하시나...?"
지혜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궁이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지혜는 말없이 다가가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ㅎ...할머니?"
.
.
.
.
.
.
.
다음화에 계속 ♥️
댓글과 응원 부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