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신혼부부 생활

06 기억의 시작점

지혜는 부엌 문 앞에 멈춰 섰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은 할머니는

장작을 툭툭 건드리며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ㅎ… 할머니?”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이고, 손주며느리 일어났네?”

 

“…뭐 하세요?”

 

“죽 끓이고 있지. 아침엔 속 따뜻한 게 최고여.”

 

지혜는 멍하니 서 있었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냄새.

고소하고, 짭짤하고, 이상하게도—낯설지 않았다.

 

‘…이 냄새…’

 

“왜 그래? 아직 덜 깼어?”

 

“…아뇨. 그냥…”

 

지혜는 가슴을 살짝 눌렀다.

심장이 이유 없이 빨랐다.

 

“할머니.”

 

“응?”

 

“저… 예전에 여기 와본 적… 있나요?”

 

할머니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주 잠깐이라서, 지혜가 아니었으면 못 봤을 정도로.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겄다.”

 

“아… 그렇죠. 제가 이상한 질문 했네요.”

 

지혜가 웃으려 했지만,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방문이 덜컥 열렸다.

 

 

“지혜야?”

 

남준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이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그... 냄새가 나서…”

 

“아, 할머니 죽 끓이시고 계셨구나?”

 

할머니가 힐끗 남준을 보더니 말했다.

 

“남준이 너는 여전히 잠버릇이 엉망이구나! 허허”

 

“…네?”

 

“어릴 때도 그랬어. 자다 일어나면 꼭 머리 저 모양이었지.”

 

남준은 웃으며 고개를 긁었다.

 

“할머니, 그런 얘긴 좀…”

 

“뭐 어때. 색시 앞인데.”

 

지혜는 그 말에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할머니…!”

 

“아이구~ 부끄럽긴.”

 

할머니는 죽을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둘 다 앉어. 금방 된다.”

 

나무로 된 작은 상, 그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이 참으로 맛있어 보였다.

 

“와… 맛있겠다.”

 

지혜가 조심스럽게 한 숟갈을 떠 입에 넣는 순간—

“? 지혜야 왜그래? 뭐 들어 있어?”

 

“…어?”

 

지혜의 눈이 흔들렸다.

 

“왜 그래?”

 

“…이거…”

 

지혜는 숟가락을 내려다봤다.

손이 살짝 떨렸다.

 

“이거… 먹어본 적 있어.”

 

남준의 표정이 굳었다.

 

“…뭐?”

 

“확실해. 이 맛… 그냥 ‘맛있다’가 아니라…”

 

지혜는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아파…”

 

“지혜야, 무리하지 마. 괜찮아, 안 먹어도—”

 

“아니.”

 

지혜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나… 누가… ‘속 버리면 안 된다’고… 이거 먹으라고 했어.”

 

할머니의 시선이 지혜에게로 향했다.

 

“…….”

남준은 그 침묵을 눈치챘다.

 

“할머니?”

 

“…사람 기억이라는 게 말여.”

 

할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게 있어.”

 

지혜는 숨을 삼켰다.

“할머니… 저, 예전에…”

 

 

“지혜야.”

 

남준이 말을 끊었다.

 

“…지금은 여기까지 하자.”

 

지혜는 남준을 봤다.

그 눈엔 걱정과, 두려움과, 묘한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알겠어.”

 

하지만 이미 무언가는, 움직이기 시작한 뒤였다.

 

 

 


 

 

 

 

잠시 후.

지혜는 마당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우물 옆에 놓인 낡은 나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뚜껑을 여는 순간—

조금 바랜 사진 한 장이 보였다.

 

젊은 남자, 그리고—

‘…나?’

 

지혜의 숨이 턱 막혔다.

 

“이게… 뭐야…”

 

사진 속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차가운 얼굴이었다.

 

“…이거 나 잖아…?”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혜야.”

 

지혜는 돌아섰다.

 

 

“이거… 뭐야?”

 

남준은 사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굳었다.

 

“…그걸 어디서...!”

 

“남준 씨”

 

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여기 와본 적 있지.”

 

“….”

 

그 순간,

멀리서 휴대폰 진동 소리가 울렸다.

남준의 전화였다.

 

“…전화 받아야겠다. 나중에 얘기하자.”

 

남준이 전화를 받는 동안,

지혜의 손이 떨렸다.

 

“…이건…”

 

그리고 그녀는 확신했다.

이것이 기억의 시작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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