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그는 지혜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몸을 돌려, 마당 끝으로 걸어 나갔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눈매가 굳었다.
“어, 지민아.”
수화기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 남지혜를 쫓던 신호가 끊어졌어요.”
“…뭐라고?”
“완전히 소실된 건 아닌데, 위치 추적이랑 생체 반응이 동시에 끊겼어요.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누군가 개입한 흔적도 없고요.”
“으윽…!”
남준은 신음 소리에 집 쪽을 돌아봤다.
마당 한가운데 서 있던 지혜가, 갑자기 관자놀이를 짚었다.
“지혜야…?”
“형, 이건 좀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
그 순간이었다.
“ㅁ.. 머리가 ... 남주...ㄴ...”
지혜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녀는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다.
“아… 아파…”
남준은 전화를 쥔 채 그대로 달려갔다.
"ㅈ...지혜야!”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숨이 가빠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억지로 참아내는 것처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야, 잠깐만 ㄴ.. 나중에 통화하자”
“형? 형! 지금 무슨—”
남준은 전화를 끊었다.
지혜가 그의 품 안에서 작게 몸을 떨었다.
“무서워…”
그 한마디에 남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부엌 쪽에서 소리가 났다.
“어이구! 이게 무슨 일이여!”
할머니가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지혜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
“아이고… 아이가 왜 이래!”
“할머니, 갑자기 쓰러졌어요...!! 지...지혜야...”
“가만있을 때가 아니여. 병원 가야지!”
남준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할머니, 우선 차로 지혜 데려가는 것 좀 도와주세요!!"
'병원'
그 단어 하나에,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안 될 것 같아요....”
할머니가 남준을 똑바로 바라봤다.
“뭐가 안 된다는 거여?”
“지금 병원에 데려가면… 문제가 될 거에요...”
“사람이 쓰러졌는데 무슨 문제 타령이여!”
지혜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으으…”
그 목소리에 남준의 시선이 흔들렸다.
“…다른 데로 우선 데려갈게요, 걱정 마세요 할머니”
“어디로?”
남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가 아는 의사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그를 가만히 보았다.
“…너, 이 아이 데리고 뭘 숨기고 있냐.”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할머니, 정리하고 말씀드릴께요"
VIP 병실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지혜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산소 마스크가 얼굴을 덮고 있었다.
기계음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와…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정국이었다.
그는 지혜의 눈동자를 확인하고, 손목을 짚었다.
표정이 서서히 진지해졌다.
“두부 외상 흔적이 꽤 오래됐어.
그리고… 기억 상실 상태네?”
남준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기억을 잃은 건 확실하고...
그리고 지금 이 두통이랑 발작… 이건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야.”
“…치료 가능해?”
“가능하지. 지금 당장 치료하면, 기억 회복도 진행할 수 있어.”
남준의 시선이 흔들렸다.
“… 그건 안 돼.”
정국의 손이 멈췄다.
“뭐?”
“지금은… 기억을 되찾게 하면 안 돼.”
정국은 남준을 똑바로 바라봤다.
“야,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아프지 않게만 해줘.”
남준은 고개를 숙였다.
"...?"
“두통이랑 발작만… 없애줘.”
정국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찾는 게 치료야. 근데 무슨...!”
“…부탁이다.”
“너, 예전부터 이랬지.
항상 네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정은 혼자 다 해.
짜식이 말도 안하고....”
정국의 시선이 침대 위의 지혜로 옮겨갔다.
“이 사람, 누군데”
“…중요한 사람이야, 나한테”
“나한테 데려왔음 당연히 중요한 사람이겠지, 누구냐고
내 질문이 무슨 소린지 몰라?”
"
정국은 남준을 다시 봤다.
“…이상하다.”
"...?"
“설마, 너 혹시....”
말을 멈추고, 다시 지혜를 봤다.
“…이 사람 좋아하냐?”
남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미친 놈.”
그러면서도 말했다.
“일단 통증은 잡아줄게. 하지만 기억은… 언젠가 돌아온다.
그건 알아둬라?”
"알지..."
남준은 눈을 감았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지혜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남준 씨…”
잠꼬대처럼 낮은 목소리.
“도망가지 마…”
남준은 그 손을 잡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잡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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