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귀 앞으로 가 하고싶은대로 해보거라"
“…”
“연화야. 대답해야지..!"
“겁을 먹은 모양이구나"
송씨는 껄껄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겁 먹지 말거라. 태형은 검을 잘 쓰는 무당이니"
아이는 그 말을 듣고 태형을 슬쩍 보더니 상자 안을 보고선 방울과 부채를 집었어. 그러곤 마루에서 내려가 창귀 앞에 섰어. 송씨는 이가 흥미롭다는 듯 보았지.
“태형아. 무슨 일이 나거든, 창귀의 목을 치거라"
“예"
딸랑..딸랑..
아이는 창귀 앞에서 천천히 종을 흔들었어. 창귀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아이를 바라보았지.

“끼긱..끼긱..어린..아이가…무엇..끼긱..한단..끼기긱..말인가..”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아이의 종소리가 빨라지니 창귀는 끊임 없이 끼긱대고 매화 댁 안의 무당들은 놀란 기색을 보였어.
아이의 몸은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에홀린 듯 손만 움직였거든. 아이는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 웃음까지 보이며 종을 흔들었어. 그러자 창귀가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어. 그에 매화 댁 안, 많은 이들이 귀를 틀어막았어.
아이가 매실로 만든 경계 안으로 들어가려하자 태형은 놀라며 아이의 팔을 붙잡았어.
“…”

아이와 눈이 마주친 태형은 손을 내렸어. 아이는 태형을 보면서도 종을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 태형은 순간 압도당하는 기운을 느꼈어. 심지어는 아이의 눈이 푸르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지.
아이는 경계 안으로 들어가 창귀와 마주했어. 그런데도 창귀는 아이를 먹으려들지 않았어. 오히려 나가라는 듯 소리를 질렀지.
“…”
아이는 한마디 하지 않고 종을 흔들며 빤히 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부채를 들어 창귀에게 바람을 불었어. 창귀는 더 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어.
아이가 경계 안을 나오자 태형은 곧 바로 창귀의 목을 베었어.
“그래. 무엇이 보였느냐?”
송씨가 아이에게 묻자 아이는 말했어. 무언가 달라진 기운에 송씨의 입꼬리는 호선을 보였지.

“범과 사람이 보였습니다"
“둘 다 어떻게 생겼지?”
“둘이 아닙니다. 범이 사람이고 사람이 범입니다"
“어허.. 그렇다면 행색은 어떠했느냐"
“사람의 모습은 왼쪽 뺨에 붉은 반점이 크게 있었고 한쪽 다리를 절었습니다. 범은 왼쪽 얼굴이 불에 탄 듯 흘렀고 한쪽 다리엔 붉은 피가있었습니다. 모습이 비슷한 걸 보니 한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태형아. 이 아이의 말이 맞느냐"
태형은 아이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서 굳어있었어. 그러곤 송씨가 묻는 말에 대답했지.

“..예. 맞습니다. 불에 그을린 자국은 한 달 전에 저희가 잡다가 낸 것이고 다리를 다친 건 사냥꾼이 놓은 덫에 걸려서였습니다..”
그러자 매화 댁 안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렸어.
“범을 보는 눈을 가진 자가 실제로 있단 말이야..?
“그렇게 뛰어나다는 범무당 중에 한 명도 없대..”
“사군자를 대표하는 다섯분도..?
“응.. 아무도 없대..”
송씨가 헛기침을 두어번 하자 소란스럽던 매화 댁은 잠잠해졌어.
“다들 잘 듣거라. 방금 본 것 처럼 저 아이는 영물을 타고난 아이다. 나는 저 아이를 매화 댁의3번째 범무당으로 만들 것이니, 다들 가족처럼 잘 대해주길 바란다"
송씨의 말에 모든 무당과 무녀들이 고개를 숙였어.
“예. 어르신"
딱 한사람만 빼고 말이야.
*
송씨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방 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어. 밖은 바람 한 점 없는데다가 설령 바람이 분다 해도 창을 열어두지 않아바람이 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내가 다른 이의 자리를 빼앗은 것인가"
송씨의 시선 끝에는 상석에 앉아있는 한 사내가 보였어.
그 사내를 보자 송씨는 예를 갖추며 머리를 숙였지. 그러곤 탁상 반대에 앉으며 말했어.
“계셔야할 분께서 상석에 계시온데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매화의 주인이 이리 대접을 해주니 어찌 좋지 않을까"
“그 아이는 잘 보셨습니까"

“창귀 앞에 데려다 놓으니 마음이 흔들려 잘 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웃음을 지었지만 송씨는 알 수 있었어. 그 말 안에 뼈가 담겼다는 것을 말이야.
“송구합니다. 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수순인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무어라 말을 했는가? 어찌 그리 억울해보이는가.”
“..자칫 하면 달려들었을 분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허허.. 정식 범무녀가 되기 전까지는 조심히 다루어주게. 많이 아끼는 아이니"
“구슬까지 주셨으니 말하지 않으셔도 압니다. 허나 어찌 구슬까지 가지고 있는 귀한 아이가 그런 집에서 났단 말입니까?”
“그 아이의 부모는..”
*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밖에서는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았어.
“그럼 태형님이랑 정국님보다 뛰어난 범무녀가 되는건가?”
“아무래도 그러지 않을까.. 선천적 재능일테니..”

“다들 시간이 많은가보구나"
“태형님..!"
“가서 공양이나 더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죄송합니다..!!”
무당과 무녀들이 자리를 뜨고 아이는 마당 바닥에 앉아 창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 축축히 젖은 경계를 손으로 만지려 하는 아이를 멈춘 건 태형였지.

“죽고싶거든 그대로 손을 뻗어 경계를 훑어보거라"
“…”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가득 안고 태형을 바라봤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너는 방금 우리가 다섯날 동안 좇은 범의 행색을 단 몇 분만에 알아냈다. 실력이 있다는 것이겠지"
“감사합ㄴ..”
“나는"
태형은 천천히 아이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어.
“너를"
아이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지. 경계의 발 끝이 닿을 듯 할 때.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태형의 눈이 분노로 가득 차 보였어.
*
“..그럼 저 아이는..”
“자네만 알고 있게. 때가 되면 저 아이도 알게 될테니. 내가 부탁한 건 부디 잘 해주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새하얀 도포자락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러자 송씨가 일어나 구겨진 옷을 곱게 펴 주었지.
“이제 가시는겁니까"
“나도 내 터가 있는데 자리를 지켜야지"
“몸 건강히 하세요"

“매화 댁도"
고개를 까닥이며 웃음지은 사내는 방 안에 바람이 휑 하고 부는 사이에 사라졌어.
“저 아이는 타고났구나. 이쪽 세계에서도 저쪽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