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일찍 아이는 신당에 가 기도를 올리고 선비의 집으로 올랐어. 넓은 마당에 오르는 길, 계단 위 보이는 붉은 핏자국에 아이의 등골이서늘했지.

“선비님..!"
아이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어. 치마가 혹여 밟혀 넘어질까 위태위태 하며 뛰어올라가자마자 아이는 검을 뽑았어.
검 끝에는 붉은 피를 밟고 검은 옷을 펄럭이며 서 있는 남자가 있었어.
선비를 찾을 새도 없이 아이는 칼을 겨누어 섰지.
“..네놈이로구나"
“범.. 범,무녀로구나..”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아니, 범은 피가 뚝뚝 흐르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렸어. 그는 뒷걸음질을 치긴 커녕 아이를 노려보았지.
“나를 죽이거든 이 숲의 주인부터 죽여야하지 않겠느냐"
“사람을 물어 죽이고 뜯어 먹으며 창귀로 만드는 역겨운 너희가 부르는 산신따위 난 믿지 않는다"

“숲의 주인은 분명 있다. 너도 물론 그를 만났지. 이 숲도 저 숲도 그 주인의 것이지. 어찌 우리는 죽이고 그 주인은 죽이지 않는가"
남자의 다리가 천천히 아물어갔어. 100년을 넘게 살았으니 범도 사람도, 살아있는 것도 아니었지.
대치하던 칼을 휘두르는 순간 남자는 아이의 눈 앞으로 다가와 큰 손으로 목을 잡아 올렸어.
“어흑,커흑..!"
“미천한 인간이여. 어찌 나를, 이 범을, 산신님을 죽이려드는가"

범의 눈이 붉게 물들어갔지. 그 붉은 눈은 아이를 훑어보며 조소를 흘렸어.
“아아.. 네가 그 년이구나. 범에게 물려죽은 부모를 둔.. 백호라지?네년이 가진 그 구슬의 주인도"
“닥,끄윽..치거라..”
“구슬의 힘을 앗아간 가짜로구나. 넌 가짜 범무녀로다"
“닥..흐윽..치라,하였..다..”
범은 끼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웃기 시작했어. 범의 형상과 서서히 겹쳐지며 물려죽을 때의 형상이 드문드문 보였어. 떨어져나갈 듯 더그럭 거리는 목은 삐걱대며 뒤틀어졌지.
“크극,큭,하하크큭킇큭.. 가짜로다.. 가짜!!”
“아,니다.. 나,는 가짜가..끅..”
“네 년을 삼키면 그 구슬까지 삼키니 내가 그 힘을 잡아먹겠구나"
아이는 정신을 잃으려 할 쯤 손에 든 칼을 겨우 들어 빠르게 범의 볼을 내리찍었어.
“으악!!이 년이..!!”
범이 아이를 바닥에 던지듯 하자 아이는 재빨리 일어나 검을 줍고 범의 춤 끝자락의 자세를 취했어. 그러곤 매실 향유 주머니를 터트려 바닥에 흩뿌렸지.
“후우.. 숲을 어지럽히고 인간의 생사를 뒤섞어 놓은 검은 피의 악귀여. 소멸하거라"
아이의 칼이 하늘 위로 향하고 활 시위가 당겨지듯 팔꿈치를 뒤로 뻗은 아이는 가볍게 뛰어 날아올랐어.
머리가 바닥으로 다리가 하늘로향했고 몸이 고운 원를 그리며 날카로운 칼은 범의 목을 잘라내었어.

범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자 이는 천천히 검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어.
그러곤 아이는 정신을 잃었지.
*

“정신이 드는가"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희고 고운 얼굴을 가진 선비였어. 선비의 행색을 훑다가 흰 천이 둘러진 팔을 보았지.
“선비님 팔을 다치신겝니까..!!”
아이가 몸을 일으키자 선비는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어.
“괜찮으니 누워있거라. 많이 지친 모양이구나"
“허나 팔이..”
“괜찮대도. 조금 스친 것 뿐이다"
아이는 그 말에 천천히 몸을 뉘였어. 삭신이 아파오는 듯 했지.
“용감하더구나. 그 큰 범을 혼자 그리..”
“그 범을 잡기 위해 왔습니다..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기특하다. 기특해..”
“종이와 붓을 주시겠습니까?어르신께 전해야겠습니다"
“지금은 달이 밝았으니 이 밤이 모두 지나면 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한 시라도 빨리..”

“나는 네가. 이곳에 더 머물렀으면 한다"
일렁이는 촛불이 선비의 얼굴을 밝혔고 주홍빛 불빛은 붉어진 아이의 얼굴을 숨겨주었어.
아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
“얼굴이 붉어졌구나. 열이 나는 건 아니겠지?”
“놀리지 마십시오.. 말씀하신대로 밤이 늦었으니 선비님도 주무십시오..”
“여기가 내 방이다"
“예?그러면 제가..!!”
“그러니 오늘은"
“이곳에서 같이 잠을 청하도록 하지"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포의 옷고름을 풀어내었어.
아이는 선비를 부르며 이불을 뒤집어 썼지. 선비의 입가엔 큰 동굴이 졌어.
“선비님..!!”

“어허.. 이 방의 주인이 잠을 청하려 하는 것인데 어찌 그대가 부끄러워하는가"
그러곤 아이가 뒤집어 쓴 이불을 들춰 몸을 뉘었지. 아이의 머리에 팔을 내어주고 여린 몸을 단단히 끌어안았어.
“오늘은 많이 지쳤으니 기대어 자거라"
“그래도..”
“불을 끌터이니. 이제 자자꾸나"
후-
방 안에 불이 꺼지고 달빛만이 남았어.
여러분..
두 달 만인가요..?
늦게 와서 여러분을 기다리게 한 점 죄송합니다..
시간이 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쁜 일상이
이곳에 찾아오지도 못하게 만드네요..
사죄의 의미로 다음편은 순도 100%(까지는 아니겠지만)
달달함을 듬뿍 넣어보겠습니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만나요🥺
오랜만에 온 만큼 여러분의 많은 반응 보고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