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 .. 진짜 가기 싫다 “
학교가 가기 싫었다. 가서 볼 불편한 얼굴이 둘이나 되니 원래도 가기 싫었던 곳이 정말 지옥처럼 느껴졌다.
범규도, 최수빈도 다 보기 싫었다. 최수빈의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왠지 모르게 보기 싫었다. 아니 보기 껄끄러운 게 맞는 것 같다.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은 한 순간에 나의 망상이 되었고 그 괴리감 속에서 난 방황하고 있었다.
똑똑,
“ 김여주! 얼른 일어나! ”
“ .. 하 ”
엄마의 부름에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그렇게 학교 갈 준비를 했다.
“ … ”
“ … ”
집을 나오니 역시나 기다리고 있는 최수빈이었다. 쟤는 자존심도 없는거야 뭐야.. 진짜
난 애써 최수빈을 무시한 채 혼자 걸어갔다.
그때,
탁,
“ .. 같이 가자 ”
“ .. 넌 내가 안 불편한가봐 ”
“ 어..? “
이미 얽히고 얽혀 자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 것 같은 관계의 실은 이제 버티는 것이 조금 힘들어보였다.
“ 나.. 니가 불편해. 수빈아 ”
“ ..!! ”
마음에 있었던 말인지 아니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은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말을 듣자 내 팔을 잡은 최수빈의 손은 스르륵 풀렸고 난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뒤돌아 학교로 향했다.

” 왁! “
” … “
뒤에서 최연준이 날 놀래켰지만 난 지금 그 장난을 받아줄 정신이 아니었다. 최연준의 얼굴을 보니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 ㅁ..뭐야 김여주 무슨 일 있었어? 눈이 왜 부었..ㅇ “
결국, 내 눈물샘은 또 터지고 말았다.
“ 흐.. 최연준.. ”

“ .. 뭔 일 있었구나 “
” 흐흑.. 나 진짜 어떡하지..? ”
결국 난 반에 들어가지 못하고 최연준과 함께 홈베이스로 향했다.
” 뭐? 그게 진짜야? “
” 응.. 최수빈이 그때 싸운 이유도 그거 때문이래 “
” 허.. 그거 완전 정신 나간거 아니야? “
” ..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
” .. 최수빈이랑은 어색하고? “
” 최수빈은 계속 다가오려고 하는데 내가 외면하고 있어. “
” … ”
“ 미안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걔 얼굴 보기도 힘들어 ”
“ 미안하다는 건.. “
” 그딴 놈 좋아하자고 걔한테 화내고 했던 게.. “
” .. 김여주 “
” 왜.. ”
스윽,
“ 네 마음은 온전히 네꺼야. 그 마음 하나는 니가 하고 싶은대로, 그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 게 맞는거고 ”
“ … ”
“ 최수빈이 이런 면에선 너보다 더 연애고수 같네 “
“ 어..? ”
“ 걘 자기 마음 가는대로 인정하고 너한테 표현했잖아 ”
“ … ”
“ 연애든, 짝사랑이든 네 마음이 가는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해. 그걸 잘하는 사람이 고수인거지 ”
“ … ”
최연준의 말을 들으니 머리가 한 대 얻어맞은 것 마냥 띵했다. 그래 최수빈 성격에 그건 정말.. 큰 용기였겠지
“ 둘 중 누구를 선택할 지는 정해진 것 같네 ”
“ … ”
“ 이제 한 번만 더 결정하면 돼 ”
“ 뭘.. “
” 그 사람을 선택할 지를 결정하면 돼 “
” … “
” 그 사람 마음을 받아줄지, 말지 말이야 “
“ 그건.. ”
“ 네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봐 ”
“ … ”
“ Yes인지, No인지 ”
그때,
톡,
“ 어..? ”
“ 아침에 비 온다고 하긴 했는데.. 우산 챙겨왔어? ”
“ 챙겨오긴 했는데 ”
아침에 최수빈 손에 우산 없었던 것 같은데.. 안 챙겨왔으려나..
그렇게 최연준과의 대화를 마치고 난 바로 이동수업 교실로 향했다. 사실 수업 내용도 딱히 머리에 안 들어왔다.
최수빈도 아침에 조금은 충격을 받은 것인지 내 옆이 아닌 다른 친구의 옆에 앉았고 나도 그 안경 쓴 여자애 옆에 앉았다.
범규는 오늘 결석이라고 들었다. 그래도 제일 보기 껄끄러운 얘는 피했네
시간이 지날 수록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소나기처럼 금방 그칠 비 같지는 않았다. 우산꽂이를 보니 최수빈 우산이 없었다.
늘 잘 챙기던 놈이 안 챙겨오다니.. 쟤도 지금 머리가 복잡한가보다
시간이 흘러 하교 시간이 되었고 난 걸레 청소와 선생님 심부름을 하느라 가장 늦게 가방을 챙겨나왔다.
가는 내내 최수빈 걱정만 했다. 얘는 우산도 없이 어떻게 간걸까, 설마 비를 다 맞고 간걸까
가뜩이나 몸도 약한 놈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쩔려고
그렇게 걱정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다 와 있었다.
스윽,
“ ..!! ”
“ … ”
집 대문 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건 바로 최수빈이었고 머리도, 교복도 모두 젖은 채로 우리 집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순간 나는 놀라 집 앞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스윽,
“ 멍청아..!!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

“ … ”
“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
“ … ”
“ 아니 대체.. ”
그때,
꼬옥,
“ ..!! 최수빈.. “
“ 내가 미안해.. 제발 나 피하지마.. 여주야 ”
“ .. 너 ”
“ 나 불편해하지마.. 내가 잘못했어.. “
갑자기 최수빈은 날 안았고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는 울며 말했다.
내가 아침에 한 이야기가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 아침에 내가 한 말은.. ”
“ 제발.. 내가 잘못했어 여주야 “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얼마나 충격이었길래 이렇게 대성통곡을 해..?
“ .. 최수빈. 나 봐 ”
“ … ”
“ 일단 들어가자. 너 이러다가 감기 걸려 ”
“ 하지만.. ”
“ 안 피하고 안 미워할테니까. 일단 들어가자 수빈아 ”
“ … ”
결국 최수빈을 우리집으로 데리고 들어왔고 다행히 엄마,아빠 둘 다 없었다. 최수빈을 욕실로 집어넣고 옛날에 최수빈이 우리집에 놔두고 간 옷들을 앞에 놔뒀다.
잠시 후,
“ .. 다 했어 “
” 이리 와. 오랜만에 말려줄게 “
난 꽤 오랜만에 최수빈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어릴 땐 헤어 디자이너가 된 것 같은 마음에 종종 말려주고 고데기도 해줬었는데
예전엔 무릎 꿇고 해도 됐었는데 이제는 서도 꽤나 높았다. 최수빈이 진짜 많이 크긴 컸구나
탁,
“ 다 됐다. ”
“ .. 고마워 ”
“ … “
” … “
정말 어색했다. 나와 최수빈 사이 그렇게 긴 침묵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나도, 최수빈도 많이 변했긴 했구나
그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최수빈이었다.
” 정말.. 미안해. “
” .. 아니야. 니가 잘못한 거 없어 “
” 하지만.. “
” 처음부터 결정을 미루겠단 선택도, 그 아이를 좋아했던 것도 나 내 선택이었어. “
” … “
” 니가 그 말을 했었어도 그 선택들은 변함이 없었을거야 “
” … “
“ 온전히 내 선택들이었으니까 ”
그래. 사실은 그 모든 결정들은 전부 내가 했다. 최수빈이 내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과연 내가 그 아이를 덜 좋아했었을까
아니 난 거부하려고 하면서도 그 아이를 좋아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 이야기를 한 최수빈을 원망했겠지
“ 난 오히려 고마워. ”
“ 어..? ”
“ 상처 안 받게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
“ … ”
지금 내 마음이 가는대로 말하고 행동해보고 있다. 과연 이 말들이 추후 어떤 변수가 되어 또 그 수많은 관계들을 변화시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 싶다.
“ 이런 말 이기적이라는 거 아는데.. ”
“ ..? ”
“ 나도 너 안 미워할테니까.. “
“ … ”
“ 계속 나 좀 좋아해줘. 수빈아 ”
우산에 포물선이 있는 이유는 그저 비를 효율적으로 막기 위함이 아니다. 계속해서 떨어져내리는 물들을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기 위함이다.
고여 썪히지 않도록, 무거워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산이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이유는 더 넓은 부분이 젖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비를 막아주기 위함이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그 사람을 적시지 않도록
금방 그 사람의 마음이 다시 뽀송해지고 마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 .. 진심이야? “
” 응. 이게 내 마음이 말하는 진심이야 “
나의 우산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 우산의 포물선 같은 사람. 난 그 사람이 좋아
내 마음이 정한 답은 Yes인 것 같아. 연준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