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정석

7 단원. 소행성 충돌

“ 왜 싸웠냐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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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라 ”

“ 너 진짜 이럴거야? 왜 말 안하냐고 ”

“ … ”


최수빈은 자기가 오해 받을 상황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대답하지 않는다. 대체 왜 싸운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범규가 먼저 쳤을까? 아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게 당당하지 못해서 이렇게 나오는 건가?

결국 난 최수빈에게 소리 치고 말았다.


“ 왜 싸웠냐니까?! ”

“ ..!! ”

“ 니가 이유 없이 사람 팰 놈이야? 이유 있어도 안 패는 놈잖아, 너 “

“ … ”

“ 근데 왜 치고 박고 싸운 거냐고 “

” … “

“ 아니 왜 말을 안 해? 넌 내가 너 오해해도 좋아? ”

“ 아니.. ”

“ 근데 왜 말 안하고 그렇게 버티고 있어? “

” … ”


그때,

스윽,


“ 야..! 너 손..!! ”

“ .. 아 ”


순간 아차 싶었다. 최수빈은 어릴 때부터 나랑 싸우면 늘 주눅이 들어 아무말도 못하고 내 눈치만 살폈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을 뜯는 버릇이 있었는데

역시나 아까부터 뜯은 것인지 검지 옆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결국 난 화내던 것을 멈추고 방에 들어가 구급상자를 꺼내왔다.


스윽,


” 아..! “

” 그러게 누가 뜯으래? “

” .. 미안 “

” 미안하면 싸운 이유나 말해주던가 “

” .. 그것도 미안 “

” 에휴.. 진짜 “


스윽,

탁,


“ 자 됐어 ”

“ … ”

“ 화 안 낼테니까 어깨 좀 펴 ”

“ .. 진짜? ”

“ 진짜로 “


나의 말에 이제야 어깨를 피고 날 똑바로 쳐다보는 최수빈이었다. 진짜 저럴 때보면 아직도 유치원생 같다니까


“ .. 여주야 “

” 왜 “

” 떡볶이 먹을래..? “

” 너..! “

” 내가 사줄게~ 응? ”

“ .. 진짜 ㅎ “


역시나 내 기분 푸는 법을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다. 결국 싸운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 아니 진짜 수도권이 제일 맛있다니까? ”

“ 에이 그래도 그건 좀.. ”


평소와 똑같이 최수빈과 함께 등교했고 오늘은 최수빈이 아닌 범규를 파볼 예정이다. 범규는 억울한 입장이라면 나한테 이야기해주지 않을까 싶은데

스윽,


“ 어? 여주 왔어? ”

“ .. 저 범규야 ”

“ 어? ”

“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


그렇게 범규만 따로 불러 우린 운동장 벤치로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수빈보다는 범규가 아주 조금은 더 억울한 입장 같아보였다.

범규가 먼저 최수빈에게 반감을 들어냈던 건 아니니까


“ 어제 일 때문에 부른거지? ”

“ 어? 아.. 맞아 ”

“ 수빈이가 말 안 했나보네 “

” 뭐를..? “

” 수빈이가 여주 너한테 숨기는 게 생각보다 많더라 ”

” .. 어? “

” 솔직히 나도 싸운 이유는 말해줄 순 없어. 근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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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빈이를 너무 많이 신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 … ”

“ 여주 네가 알고 있는 수빈이가 정확히 어떤 수빈이인지는 모르겠지만.. ”

“ … ”


최수빈이 나한테 숨기는 게 많다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물어본 질문과는 너무 다른 답변이었다. 예상한 답변도 아니었고 내 질문에 들어맞는 답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답변은 내 머리를 아주 강하게 때렸다.


“ 그나저나 어제 많이 놀랐지? ”

“ 놀라기야.. 놀랐지. 너 얼굴은 괜찮아? ”

“ 응. 다행히 입 옆에만 터졌더라고 ”

“ ..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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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주 네가 걱정해줘서 금방 낫겠다 “

“ ..!! ”


두근,

두근,


범규도 최수빈 못지 않은 힘으로 계속해서 날 당기고 있다. 이 팽팽한 싸움 속에서 난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이미 두 행성은 부딪히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상처도 입혔고 이대로 쭉 가다간 둘 중 하나는 부서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이 느껴졌다.

결국 범규에게서도 싸운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체육시간,


“ 자 오늘은 풋살을 할건데 여자애들은 어떻게 할..ㄹ ”

“ ..? ”

“ 이미 다 벤치로 갔구나.. 응 ”


뒤를 돌아보니 정말 나 빼고 전부 벤치에 가 있었다. 뭐야 이러니까 내가 진짜 찐따 같잖아 내가 친구가 없는거지 찐따는 아니란 말이야


“ 최수빈 너 발 다친지 얼마 안됐잖아. 나랑 벤치나 가자 ”

“ 그래 “


발을 다쳤던 최수빈을 데리고 나도 벤치로 향했다. 가서 다시 이유나 캐물어야지


” 날씨도 더운데 애들 잘 뛴다 “

” 어후 난 못 뛰어 ”

“ 넌 발 안 다쳤어도 못 뛰었잖아 ”

“ 아 그러니까.. 못 뛴다고.. ”

“ 푸흐.. 삐졌어? 어? ”

“ 아 저리가.. ”

“ 우리 수빈이 삐졌어요~? ”

“ 저리 가라고..! ”


그때,

스윽,

탁,


“ ㅇ..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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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게, 다가오지 말랬지 “

“ … ”


두근,

두근,


생각보다 더 큰 힘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최수빈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큰 질량을 갖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최수빈의 질량이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18년하고 2개월이란 시간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너.. 진짜 아주 요새 나 놀리는 거에 맛 들렸지?! “

” 에이 설마~ ”

“ .. 그나저나 너 싸운 이유 진짜 얘기 안 해줄거야? ”

“ 왜? 궁금해? ”

“ 지금까지 한 번도 주먹다짐 안했던 니가 싸운 것도 의아하고.. “

“ 최범규가 걱정도 되고? ”

“ 아니 그게.. ”

” .. 나도 알아. 아직 최범규가 더 가까운 거 “

” … “

”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다가가고 있는거고 “

“ … ”

“ 뭐 이러다 정말 최범규가 먼저 닿으면 그땐 정말 깔끔히 포기해야지 “

” .. 너 “

” 왜 갑자기 동정심이라도 들어? “

” 무슨..! “


그때,

쓰담쓰담,


“ ..!! ”

“ 그럼 지금 결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줘 “

“ … ”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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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아직 열심히 가고 있으니까 “

” … “


작은 행성들이 하나 둘씩 날라와 나를 쿵쿵 치는 느낌이었다. 비록 작은 힘으로 만들어낸 아주 작은 진동이었으나 그 진동은 내게 와 엄청난 파동이 되었고

그 파동에 의해 내 우주엔 큰 소용돌이가 치는 듯 했다. 이제껏 유지해온 나의 우주를 모두 뒤엎는 그런 소용돌이를

성운에 가려져 그저 작은 돌맹이라고 생각했던 그 행성은 아주 큰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