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정석

8 단원. 무지개 피는 날

여느때와 다름 없이 최수빈과 함께 등교를 했다. 불청객인 예고 없던 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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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비가 갑자기 이렇게 많이 오냐 ”

“ 그러게. 우산 챙겨오길 잘했다 ”

“ 근데 키가 작으면 비를 더 늦게 맞을까? ”

“ .. 그 빌드업 익숙하다. 친구야 ”

“ ㅎㅎ.. ”

“ 이게 진짜..!! ”

“ ㅇ..아!! 아 근데 진짜 넌 키가 왜 안 클까? 너희 누님이 그렇게 큰데 ”

“ 아 그쪽에 몰빵해줬나보지! 키 갖고 놀리지 말라니.. ㄲ ”


스윽,


“ 나 솔직히 여주 걔 마음에 안들어 ”

“ ..!! “

” 걔 은근 수빈이랑 범규 사이에서 꼬리치는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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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저게 무슨.. ”


탁,


“ 잠깐만..! “

“ ? 너 설마 저 얘기를 못 들어서 하는 말이야? “

“ 너나 내가 여기서 나서면.. 나 진짜 왕따 당해 ”


처음이었다. 이런 식으로 내 뒷담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서 좀 많아 놀랐다. 뭐 다른 애들이 보기엔 그래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지금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거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여기서 최수빈이나 내가 저 아이들에게 한 마디 했다간 진짜 저 소문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소문이 나는 건 쉽다. 그리고 그 소문은 점점 사실을 집어삼켜 자신이 사실 그 자체가 된다.

결국 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반에 들어갔다.


드르륵,


“ .. 안녕 애들아 ”

“ 어..? 아 안녕 여주야! 수빈이도 안녕 ”

“ … ”


정말 그 아이들의 얼굴이 가면 같았다. 날 질타하던 얼굴은 금세 사라지고 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난 어릴 때부터 웃는 가면을 싫어했다.

진짜 얼굴도 아닌데 얼굴처럼 보이려 입꼬리를 과하게 올리고 눈을 접은 모습이 소름 끼쳤다.

그리고 그 안에 숨어있을 진짜 얼굴이 무서웠다. 그 안엔 어떤 존재의 얼굴이 있을지 모르니까

괴물일 수 있고 나쁜 마녀일 수 있고 무서운 사자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 가면을 나도 쓰고 말았다.


“ 오늘 우리 체육 수업 있지? “

” 응응. 3교시야 “

” .. 그래 “


최수빈도 그 아이들을 한 번 노려보고는 그냥 본인의 자리로 갔다. 하 아침부터 기 빨리게 이게 무슨 일이야..


그때,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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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안녕? “

” .. 안녕 “


범규가 상큼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줘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저 저 인사를 보고 또 부풀게 될 소문과 험담들이 걱정될 뿐이었다.


“ 우산 챙겨왔어? 밖에 비오더라 ”

“ 아.. 응 ”

” ..? 무슨 일 있어?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데 “

” 아..아니야. 괜찮아 “

” 진짜? “


스윽,


“ ..!! ”

“ 열은 안 나는..ㄷ ”


탁,


“ ㅇ..여주야 ”

“ 그..그게 미안해.. ”


나도 모르게 범규가 내 이마에 올린 손을 쳐버렸고 생각보다 큰 소리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듯 했다.

순간 난 긴장이 되었고 손이 덜덜 떨리며 어쩔 줄 몰랐다.

난 어릴 때부터 워낙 유리멘탈이었다. 최수빈이 외유내강인 것과 다르게 난 외강내유였다. 보기엔 강해보일지 몰라도 확실한 유리멘탈이다.

그런 지금 내게 이런 상황은 매우 독이고.


그때,

탁,


“ 김여주. 매점 가자 ”

“ 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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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으니까 나랑 초코우유 마시러 가자, 얼른 ”

” .. 으응 “


결국 난 범규에게 사과를 건넨 후 최수빈과 함께 반을 나와 매점으로 향했다.

스윽,


“ 자 여기 ”

“ .. 고마워 ”

“ 김여주 유리멘탈 어디 안 가네 ”

“ .. 미안해 ”

“ 나한테 뭐가? ”

“ 솔직히 애들 말 틀린 거 없잖아.. 내가 너랑 범규 사이에서.. “

“ 틀린 게 왜 없어? 시작부터 틀렸더만 “

“ … “

“ 그 결정 미룬 거 나야. 내가 기다려 달라고 한거잖아 ”

“ … ”

“ 넌 그냥 친구로써 내 부탁 들어준거고 ”

“ … ”

“ 괜찮아. 넌 절대 왕따 안 당해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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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평생 친구 해줄게! “

“ … “

“ 너한테 차여도 친구는 쭉 할거야. 남자친구 못하면 친구라도 해야지, 안 그래? ”

“ … “

” 그러니까 어깨 펴고 얼굴도 펴고 손도 그만 떨고 “

” … “

” 당당하게 다녀. 최수빈 친구 “

” .. 그래. ”


꿉꿉했던 날씨도 내 기분도 뽀송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난 생각보다 최수빈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있을지도

최수빈 덕에 나아진 기분으로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윽,


” 기분은 좀 나아졌어? “

” 어..? 응.. 그 아까는 진짜 미안했어.. “

” 아까부터 쭉 미안한 거 충분히 느꼈어요~ 그만 말해도 돼 “

” 그치만.. “

“ 괜찮아졌다니 다행이네 ”

“ ㅎ.. “

“ .. 매번 느끼는거지만 여주 넌 웃는 얼굴이 참 예쁜 것 같아 ”

“ ㅇ..어?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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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너무 예뻐서 웃을 때마다 돈 주고 봐야될 것 같다니까 “

” 푸흐.. 무슨 아이돌 주접 듣는 것 같다 “


수준 높은 아이돌 주접을 이야기하는 범규에 생각보다 귀여운 면이 더 있다고 생각했다. 범규식 위로도 참 듣기 좋고 힘이 되는 것 같았다.


” 어어? 봐봐 또 웃었지? 내가 지금 얼마가 있더라.. “

” 범규 너 이런 캐릭터인지 몰랐어 “

” 너한테만 특별히 보여주는거야. “

” 어..? ”

“ 너한테는 보여주고 싶은 게 참 많거든 “

“ … ”

“ .. 이상하게 너한테는 날 더 보여주고 싶더라고 “

“ … ”

“ 나도 내가 이런 적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긴 한데 ”

“ … ”

“ 나쁘지는 않아. 오히려 기대되고 설레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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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내 옆에 조금 더 있어줘. 나 다 보여주려면 아직 한참 멀었거든 “

“ … ”


대기는 뜨거운 기온일 수록 상승하고 차가운 기온일 수록 하강한다. 차갑게 식어 얼어버릴 듯했던 나의 대기가 금세 따뜻해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듯 했다.

내 마음 속 상승 기류로 인해 만들어진 구름은 마치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달했다.


그때,


“ 어? 저기 봐! “

“ ..? ”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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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


창문을 바라보니 비눗방울들이 하나 둘씩 떠올라 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난 비눗방울을 정말 좋아했다. 

비눗방울을 보면 왠지 모르게 나도 그 방울들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태양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작은 무지개 색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순간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에 뭔가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분명 더 이상 슬프지도 짜증나지도 않았는데

마음 한 쪽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너무 행복해서 그런 것 같다.

그날은 나만의 무지개가 피는 날이었다.






비하인드_





“ 수빈아 여기가 왜 이렇게 미끌거려? ”

“ 어? ”


스윽,


” 이게 뭐야? 비눗방울? “

” 아..! 그거 안 뺐다.. ”

“ 아이고 다 터졌네.. 가방 한 번 빨아야겠다 ”

“ .. 응. 빨아야지 ”

“ 얼른 가서 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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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

“ 그럼 니가 안 뺀건데 내가 하냐? “

“ ..ㅎㅎ ”

“ 얼른 가서 빨아~ 아들 화이팅~! ”

“ 하.. 진짜 ”


탁,


“ 어릴 때도 그렇고 이건 왜 그렇게 좋아하나 몰라 “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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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 그래도 확실히 기분은 좋아보였으니까 뭐 “

“ 뭐라고~? 아들? ”

“ 아 아니야! 지금 빨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