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의 정석

[휴] 영어 극혐 vs 혼혈 휴닝

W. 말랑이래요




"안 한다고!!!!"

"하라고!!"

"아 시발 영어 안 한다고!"


학교 쉬는 시간. 시끌벅적한 애들 중에서 아마도 우리가 제일 시끄러울 것이다. 아침부터 실랑이 하고 있는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17년지기 절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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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려준다니까? 너 숙제 안 하면 또 벌점 받아"

"아 벌점 받고 말지.."

"야.. 같이 대학은 가야지... 아니 이 쉬운 걸 왜!"

"나 외국에 대한건 울렁증 있어서 못 해"

"지랄. 내 얼굴 보면 토 하겠네 그럼"


책상에 앉아 멍 때리는 내 이마에 딱밤을 때리는 휴닝이였다. 이 자식이!.. 벌떡 일어나 휴닝이를 때리려 했지만


"..."


이.. 이거 존나 커서 못 때리겠네..

멀대 같은 휴닝이를 올려다보고 바로 포기하고 말았다.


"키도 작은 게 까불어"

"안 까불었어."

"학교 끝나고 카페나 가. 숙제 하는 거 도와줄게"

"...도와준다니까 가는거다."


하긴 해야한다. 다른 과목 성적은 무난한데 유독 영어만 성적이 바닥이다. 그걸 아는 휴닝이는 항상 내 옆에서 가르쳐준다 애썼지만

이미 영어에 질려버린 나는 굳이 그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었다. 근데 이대로 가다간 나 진짜 엄마한테 뒤지게 맞겠지?

엄마가 영어 선생님이기 때문에 더욱 무서웠다.

나 여기서 영어 성적 더 떨어지면.. 방학 내내 영어만 공부 하게 될지도 몰라!..


***


"책 펴봐"

"씨.. 존나 싫어 뭐라는지 모르겠어"

"문장 보지도 않고 말 하는 것봐 김여주."

"난 토종 한국인이라고"

"그래 그래 너 토종 한국인이야"


휴닝이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다 어느 부분에서 멈췄다. 그러다 집중을 하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문장을 읽어나가는 휴닝이는 정말 잘생겼다.

..내 친구지만 참 잘생겼어.

지잉- 지잉-


"야 너 전화 와"


휴닝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집중하던 휴닝이도 들고 있던 펜을 잠시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신경을 안 쓰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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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ㅇ... hey, You drunk?"

(술 마셨어?)

전화를 받는데 영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뭐지 뭐지?

휴닝이가 전화를 받자마자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은 걸 보면 안 좋은 상황인가?

"Don't piss me up.. If you ever take another drink, I'll shave you head. 끊어 나 지금 여주랑 있어"

(빡치게 하지마.. 너 더 마시면 네 머리 깎아버린다)

"엄..."

ㅎㅎ..뭐라는 거야.. 열심히 해석해보려 했지만 빠르게 말하는 탓에 시도도 못 했다. 뭐야 바로 옆에서 영어 듣기평가 하는 것도 아니고

전화를 끊자마자 투덜거리며 다시 내 문제집을 가져가는 휴닝이였다.


"아니 이 누나는 무슨 대낮부터 술을 마셔.."

"누가 술 마신대?"

"큰 누나"


근데 휴닝카이 영어 쓰는거 진짜 오랜만에 본다.

내가 평소에 영어 극혐해 해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말이 편해서 그런가.. 영어 쓰는 모습을 자주 못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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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이 문제는 풀 수 있지. 한번 봐바"

"어?.. 으응"


안 돼!...내 부랄친구한테 설렘 따위 느끼면 안된다!

괜히 침을 꼴깍 삼키며 휴닝이가 보여주는 문제를 봤다. 쉬운 문장인데 집중이 하나도 안된다.


"..."

"이것도 모르겠어?"

"..아니! 아니아니 풀 수 있어"


하마터면 쉬운 문제도 못 풀어서 놀림거리 생길 뻔했네. 한참을 끙끙 거리며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내 머리 위에 손을 턱 올린 휴닝이였다.


"거 봐. 하면 잘하면서"

"...해석하기 귀찮잖아"

"너 어렸을 땐 영어 잘 하는 사람이랑 결혼 할 거라며"

"그런 사람 없어"

"있잖아 여기"

"..."


뭐야?.. 순간 심장이 벌렁했다. 꽤나 진지해 보이는 휴닝이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안 돼 쳐다보지마 나 지금 동공 팝핀 일으키고 있다고!..


"휴닝아 저..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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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풉-.. 너 뭐냐 그 소녀같은 표정"

"놀리냐?!?!"


아니나 다를까 바로 비웃는 휴닝카이였다.

저 자식이 이제 컸다고 나를 놀리네..

씨익씨익 거리며 휴닝이의 어깨를 퍽-! 치고 애꿎은 문제집만 노려봤다.


"손도 작은 게 아프기는 엄청 아프네"

"너 까불지마라 휴닝카이"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

(그런적 없어)

"영어 쓰지마!!!!!!!"

참으로 눈물나는 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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