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다시, 내 앞에 있었다

당신이 모르는 척 안 했으면 좋겠어요

다음 날.

출근은 했지만, 그 얼굴은 못 보려고 애썼다.

자리 옮기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팀 회의 빠지고 싶은 핑계도 생각했다.

 

근데 그런 거 다 필요 없었다.

그가 먼저 왔으니까.

회의실 앞에서,

내가 들어가기 직전.

 

“잠깐만요.”

 

그 목소리에

내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진짜 짜증나는 반응속도였다.

머리는 "그냥 무시해" 하는데

가슴은 벌써 박자 맞춰 뛰기 시작함.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회의 늦어요.”

 

그가 조용히 한 마디 덧붙였다.

“그날 문자… 다시 보내면

지금도 똑같이 나갈 거예요.”

 

나는 멈췄다.

천천히 돌아봤다.

 

그가 말했다.

“근데 이번엔,

뒤따라가서 설명할 거예요.

당신이 그거 읽고 나가기 전에.”

 

 

 

 

 

 

 

 

 

 

 

회의 끝나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쪽지가 하나 툭 떨어졌다.

 

종이 쪽지.

이상원답지 않은 방식.

 

“오늘 저녁 시간 돼요? 잠깐만, 나 좀 봐요.”

 

저녁.

약속도 없었는데 괜히 가방 들고 퇴근한 척.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내 옆으로

그가 다가왔다.

말 없이, 그냥 옆에 섰다.

 

“따로 가려고요.”

내가 말했다.

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엘리베이터 문 열릴 때

그가 갑자기 말했다.

 

“그날 당신이 나를 봤던 그 눈빛

다시 보면 안 돼요?”

 

나는 문 열리는 소리도, 사람들 움직이는 것도

다 안 들렸다.

 

그 사람은 지금

내가 도망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