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다.
오전 9시 12분.
업무 시작 직후, 뜬금없이.
이상원.
뜸들이지도 않고 그냥 받았다.
“오늘 저녁, 시간 돼요?”
“왜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이번엔, 제대로.”
퇴근 후,
도서관 근처 카페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나오는 길에 괜히 화장실 거울도 한 번 더 보고 나왔는데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는 평소보다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왔다.
넥타이도 느슨했고, 손에는 준비해 온 듯한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오늘은 말 안 돌릴게요.”
그가 앉자마자 말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날,
내가 어떤 식으로든 붙잡았어야 했다는 거
이제야 인정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는 노트북을 열었다.
메일함을 하나 띄우고,
날짜를 지정하더니
2년 전 메일을 하나 열어 보였다.
“정리대상 제외 건 – 김○○
사유: 크리에이티브 주도권 보유, 핵심 자산.
잔류 요청.”
“그거,
내가 올린 메일이에요.
누가 뭐래도 당신은 남겨야 한다고—
내가, 그때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왜.”
내가 말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거 보여주면 됐잖아요.”
“그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당신이 날 안 믿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미 상처받았고,
이미 나로 인해 망가졌으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정답이었네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침묵 끝에,
내가 말했다.
“근데 나,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왜 이걸 보여주고 있는 건지.”
“…나한테 다시 기회 줄 수 있냐고 물으면
당신은 거절할 거니까요.
그래서,
그냥 마지막으로,
정리하려고요.
내 감정이라도.”
“정리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 말,
내가 했던 말이거든요.
당신이 아무것도 말 안 해줄 때,
나 혼자 계속 머릿속으로 했던 말이에요.
정리하자. 다 지우자.
잊자.”
“그게 잘 됐어요?”
그가 물었다.
“다 잊었어요?”
나는 눈을 피했다.
“…그날로 끝냈어야 했는데,
지금이 더 아파요.”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앉아서,
그날 같지도 않은 오늘을
조용히 공유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태인지
정의도 못 한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