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다시, 내 앞에 있었다

말하려고 한 게 아닌데

저녁에 카페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받고도,

나는 한참을 답하지 않았다.

처음엔 무시하려고 했고,

그다음엔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려 했다.

‘바빠서’, ‘몸이 안 좋아서’, ‘지금은 좀 아닌 것 같아서’

근데 결국엔,

아무 말 없이 나가서 그 카페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먼저 와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저 나를 가볍게 바라봤다.

 

그 눈빛이—

예전의 그와는 확실히 달랐다.

무표정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말 없이 마주 앉았다.

“와줘서 고마워요.”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커피가 식고, 창밖이 어두워지고,

그제야 그가 입을 열었다.

 

“그날 이후로—당신이 퇴사한 뒤로

계속 생각했어요.

내가 뭘 놓쳤는지,

뭘 잘못했는지.”

 

그는 말을 고르듯 조용히 손을 모았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무심해서였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니었어요.

그건 솔직하지 못해서였어요.”

 

나는 잠깐 눈을 떴다가 감았다.

왜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왜 이제야 이걸 꺼내는 걸까.

그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으면서.

 

“그때,

당신이 그렇게 나간 다음에도,

내가 계속 메시지를 쓰다가 지웠어요.

변명 같아서, 설명 같아서.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어요.”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웃음 비슷한 걸 흘리며 말했다.

 

“그 말…

그때 했으면 안 들렸을 수도 있어요.

근데 지금 와서 한다고 뭐가 달라요?”

 

그가 잠깐 나를 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내가 그때와 다르니까요.”

 

그 한 마디가—

참 이상하게 들렸다.

책임지겠다는 말도 아니고,

사과도 아니고,

‘나 변했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말 같았다.

 

 

 

 

 

 

 

 

 

 

 

카페에서 나와 걸었다.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같이 가자고 그가 제안했지만

나는 “혼자 가고 싶어요”라고 잘랐다.

 

근데 등 뒤에서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지금 하는 말들,

고백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걸음을 멈췄다.

 

그는 내 옆에 조심스럽게 섰다.

“…근데 말이 돼버렸어요.”

 

나는 다시 걸었다.

뛰지도 않았고, 천천히 걷지도 않았다.

그냥 어딘가로,

멀어지기보단

그에게서 겨우 떨어질 만큼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