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의 연인
비 내리는 날의 청룡

쿠션베개
2025.12.09조회수 7
아닐 것이다. 범규, 연준과 친해진 이후로 일진들이
괴롭히는 빈도가 확 줄었을 뿐만 아니라, 같이 있으면
꽤나 즐거웠다. 그애들이 인간이 아니래도 뭐 어떤가?
온전한 내 편인걸.
"월요일 아침부터 뭘 실실 웃어."
"그냥 기분이 좋네."
"와 미친. 어디 아프냐??"
밝은 미소가 미심쩍었는지 연준이 내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 아픈건 아닌데...
"그쯤 하지. 박하가 불편해하잖나."
"뭐래~ 늙다리는 빠져라."
범규는 늙다리란 단어에 움찔거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미 몇백년 산 요괴한테 진짜 이만한
막말도 없을거다.
"참, 오늘 내 친구 소개시켜줄게."
"친구 누구?"
"최수빈이라고 있어 우리반 부반장."
"...혹 그 친구도 요괴더냐?"
연준이 눈을 크게 뜨고서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는다.
아니, 우리 학교에는 무슨 요괴들이 이렇게
득시글거리는지.
"100년 된 청룡인데 생각보단 별거없어.
아직 이무기 수준이라서."
"하긴 원래 1000년을 수련해야 완전한 용이
되니 한참 멀었군."
"으음 그렇구나."
"아무튼 학교 끝나고 봐. 나 간다!"
복도를 걸어가는 연준을 뒤로하고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용이라... 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
점심시간까지 맑던 하늘에 어느샌가 구름이 끼더니
기어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야하는데
큰일이네.
"아.. 집까지 뛰어가야 되나."
계속 발만 동동거리고 있던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우산 같이 쓰자."
차분하여 듣기 좋은 목소리와 멀끔한 인상을 가진
남자애였다. 명찰을 보니 '최수빈' 이라 적혀있다.
"너 서박하 맞지? 연준이 지금 급한 일이 생겨가지고
먼저 가라해서 왔어."
그가 빙그레 웃어보였다.
"나는 최수빈이야. 잘 부탁해."
"응... 나도."
내민 손을 잡아 가볍게 악수를 끝냈다. 생각보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놀랐다.
"근데 집이 어디야?"
"저기, 학교 반대편 쪽."
"그래 그럼 가자."
우리는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어갔다. 오늘 처음
만난거라 어색하긴 했지만.
이 분위기를 타개하고 싶어 내가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너 청룡이라면서. 그럼 용으로 변하기도 해?"
"그냥 가끔. 내가 아직 반쪽짜리라서."
"그래도 용은 맞잖아."
내가 깊게고인 물 웅덩이를 지나치며 말하던 그때,
차 한대가 맹렬히 달려와 물을 세차게 튀겼다.
옷이 다 젖겠다 싶었으나 예상외로 그러지 않았다.
"!!"
"괜찮아? 안 젖었어?"
날 감싸 빗물을 막아준 수빈이 다급하게 물어왔다.
고갤 들어 그를 본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비에 맞은 뺨과 오른손, 목덜미에 반짝이는
푸른색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괜찮아. 근데 너 피부가..."
"이거 보통 사람들 눈에는 안보이는 건데.
나는 물에 젖으면 꼭 이렇게 되거든."
"진짜 신기하다."
수빈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아마 앞으로는 더 엄청난걸 보게 될걸?"
그 정확한 말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친구와
같이 지낼 시간이 더 기대되는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