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의 연인

구미호와의 만남

며칠 전 창고에서 장산범을 만난 뒤로 그는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가끔 날 괴롭히던 
양아치들을 골탕 먹이면서 말이다. 

"궁금해서 그런데 이 학교에 다른 괴물도 있나." 

"그럼. 확실히 요괴의 기운이 많이 느껴지는군.
 마침 근처에 있구만!" 

"엥?? 어딨는데?" 

장산범이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저자에게서 구미호 냄새가 나."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2학년 남학생이 친구와 
대화하며 걸어가고 있다. 
확실히 여우같은 인상이긴 해... 
저런 비현실적인 괴물이 버젓이 돌아다닌다니.  

"사람 둔갑이 아주 감쪽같아. 요괴도 속일수 있겠네." 

그 노란머리의 가느다란 눈매를 보며 변신하는 
모습을 그려봤다. 음. 그치만 역시 상상이 안가.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던중에,    
골목 구석의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구슬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주워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와, 광택을 보니 진짜 금 같은데. 
이런건 주인 찾아줘야 하는거아닌가? 
한창 고민에 잠겨있는데 누군가 급히 내쪽으로 
달려온다. 

"야야 잠깐만 그거 내거야, 이리 줘." 

아까 본 그 노란머리잖아. 이 구슬이 뭐라고 
저리 숨차게 뛰어오냐. 

'이거 혹시... 여우구슬인가.' 

"너, 구미호지." 

"?!그게 무슨..? 뭔 개소리하고 있어." 

"장산범이라는 애가 알려줬는데." 

허를 찔린 남학생이 크게 당황했다.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나 목소리는 떨렸다. 

"하하.., 너 뭐야. 정신 나갔어?" 

"아니 맞잖아." 

조금씩 얼굴이 굳어가는게 보였다. 사람한테 
정체가 탄로난게 처음인가보군. 

"뭐래 증거도 없으면서??" 

나는 그 애가 말하고있는 틈을 타 입 속에 
구슬을 던져넣었다. 
곧 퍼벅,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금색 여우 귀와 
꼬리들이 솟아났다. 

"아악!! 뭐하는거야?!" 

"증거 맞네." 

"하! 아니, 너 진짜...!!!" 

노란머리는 자신의 입에 들어간 구슬을 황급히 
뱉어냈다. 즉시 여우 귀, 꼬리가 스르륵 사라진다. 
머금고 있으면 구미호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틀린게 아니었군. 참 놀랍네... 

"누가 봤으면 어쩌려고 그래?!" 

"여기 폐가 구역이라 아무도 없어." 

"이씨 아무리 그래도... 후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그 애는 겨우 분을 
삭이고 숨을 내쉬었다. 
이거 내가 좀 심했던가. 

"미안. 확인해보고 싶어서." 

"됐어! 어디가서 얘기나 하지마." 

"어차피 들어줄 사람도 없거든. 걱정 마." 

내 안색이 어두워진것을 보더니 멋쩍게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크흠, 어쨌든 너 이름 뭐야?" 

"서박하." 

"오..되게 예쁘다." 

살짝 감탄사를 뱉은 노란머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최연준이야. 5반이고. 
 이왕 들킨거 친하게라도 지내자." 

어느새 노기가 사라진 연준이 시원스레 이를 보이며 
웃었다. 뭐야, 처음에는 무서운 놈처럼 보였는데 
딱히 그런것도 아니네. 
그 불량스러운 구미호와의 첫만남은 이렇듯 나름  
훈훈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