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거라 더 끌리는 거야

나쁜 거라 더 끌리는 거야 - 05




_ 나쁜 거라 더 끌리는 거야





그의 폭탄같은 문자를 받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기도 채희씨랑 노닥거렸을 거면서 나한테 왜이래? 치밀어 오르는 화를 진정 시키고 마저 양치를 하고 화장실을 나와 정국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김석진의 대한 생각을 뒤로하고 우리 아기토끼 천사 정국이나 깨우러 가자.

철컥. 하고 정국이가 잠든 방의 문을 열었다.



" 누나 좋은 아침... "


해맑은 얼굴로 날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 자다가 깬 모습도 김석진이랑 정반대일까? 김석진도 채희씨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할까. 내 앞에 있는건 분명 전정국인데 난 왜 김석진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 지금은 정국이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 깨우려고 했는데 벌써 일어났네? "


" 누나 출근 하는 거 보려고 알람 맞춰 놨어. "


오늘 분명 공강일텐데 날 위해서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준 거야..? 마음 같으면 다 집어던지고 장하다고 엉엉 울고 싶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제 남자친구예요.. 아 근데 맞다. 나 바람피고 있었지?


" 정국아, 나 이제 가볼게! 오늘 하루 잘 보내고. "


" 응응!! 누나도!! 내가 많이 사랑해!!! "


자다 깨서 피곤할만도 한데 나한테 이렇게까지 애정을 쏟아주는 그를 보며 사르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떨어지기 너무너무 아쉽지만.. 난 월급쟁이인걸?... 정국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정국이네 집을 빠져나왔다.



-



솔직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석진한테 연락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연락을 하려고 휴대폰을 들면 날 째려보는 팀장새끼 덕분에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그래서 난 애타게 점심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 퇴사하고 싶다.

미완성인 결재 서류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들 구내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난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전화는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워서 문자를 남겼다.


[ 석진이  ]

어디야? 

시간 늦었는데.

전화도 안 받네?

아직도 그 애새끼 집이야? ㅡㅡ

야아아아ㅏ 여주야아ㅏ아아 보고싶당

술 안 마심 오해 ㄴㄴ

씁.. 자고 오는 건가??

힝... 너무행

남친한테 연락도 없이 외박하는 거야?

혼난다. 너






미안해

어제 연락을 못봤네




짧게 문자를 보낸 후, 나도 구내식당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에 내 휴대폰의 전화벨 소리가 공간을 감쌌다. 아.. 보나마나 김석진 전화이겠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휴대폰 너머로 김석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주야. 너 지금 점심시간이지? @@식당으로 내려와. 밥 먹자. "


" ...어? 어. 알겠어. "


다짜고짜 어제 저녁에 연락 안 받다고 득달같이 화낼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날 불러주었다. 솔직히 안 설렜다면 거짓말이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가 날 부른 곳으로 향했다.






-





우리가 항상 밥을 먹던 곳이었다. 익숙한 자리에 그가 앉아있었다. 그는 무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미소가 얼마나 잘생겼던지... 심장 떨어지는 줄. 최대한 내 감정들을 숨기며 그에게 먼저 말을 꺼내었다.


" 미안. 오래 기다렸어? "


" 아니. 조금..? "



... 너무 어색하다. 나만 그런가? 꼴랑 바람 피운다는 사실을 밝힌 거 가지고 이렇게 어색해질 일인가? ... 아 꼴랑이 아니구나. 세컨드와 세컨드가 마주보고 있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다. 눈알만 요리조리 굴리고 있던 때, 그가 말을 했다.




" 어제 연락 왜 안 받았어. "



아. 올게 왔구나. 내 뇌리를 스쳐가는 여러 답변들 중 가장 괜찮은 답을 찾아 헤매었다. 대충.. 그냥 담백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 걔 집에 있어서 못 봤어. 미안 "



" .. 그래. 그래도... 나도 너 남친인데...... "



뭐야 왜이래. 자존심이 전부였던 나에겐 그의 모습은 새롭게 느껴졌다. 자존심 세우느라 한번도 찡얼거린 적도, 그 누구앞에서 눈물을 보인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쉽게 질투를 한다고?


" .... 자기야. 앞으론 연락 잘 볼게. "



" ... 잤어? 애새끼랑? "



김석진은 자존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감정에 솔직했고, 표현도 잘 하는 사람. 딱 사랑 잔뜩 받고 자란 사람인 티가 났다. 근데 저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본다고...??


" 좀.. 당황스러운 질문인데? "



" 알겠어.. 아주아주아주 서운하지만 티는 안 낼게. "



정말 김석진의 속을 모르겠다. 심리전인가? 결투 신청인가? 진심인가? 그런데 정말로 확실했던건.. 내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 내가 지금.. 설렜다는 것. 뭔가 이상했다. 평소같으면 자존심 지켜세우느라 아닌척 고개를 숙일텐데.. 자존심이고 뭐고 내 심장이 존나게 뛴다는 것밖에는 모르겠다.



" 자기는 정말 이상한 포인트에서 설레하는 것 같아. "


" .. 모르겠다. 니 얼굴에 설레는 건지. 니 말에 설레는 건지. "



정국이 앞에서는 이런적 한번도 없었는데. 나 진짜 심장 터지는 거 아니야? .. 그래 설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어쩌라고 김석진도 내 애인인데?? 벌렁거리는 심장을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가라앉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김석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 그냥 내가 좋아서 설레는 거겠지. "


ㅅㅂ 겨우 진정시킨 심장이 또 나댄다. 자존심이 다 구겨져 버리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나쁘지는 않았다. 오랜만이다 이런 설레는 감정은.



" 응. 그건 인정할게. 근데 너도 나 좋아하지? "



" 좋으니까 만나지. 비록 남은 사랑이지만 "



시발. 맞다 얘 내가 세컨드지? 그 조금 남은 자존심 마저 찢어져버린 것 같은 기분.... 당했다. 이 모든건 그냥 심리전에 불구했다. 그냥 김석진 손에 놀아난 거지.... 확실한 나의 1패였다. 그래도 티는 내지말자.



" 남은 사랑이라도 난 만족하니까 됐어. "


" ..그래? 난 남은 사랑으로도 만족 안되는데. "


" .... 무슨 말이야? "




" 오기가 생겨서. 자기 남은 사랑 말고 그냥 완전한 사랑 가지고 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