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말처럼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무도 축하하지 않았고,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내 마음속 어딘가엔
그 말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데이트할래?”
연준 오빠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지만,
그 말이 어쩐지 조금,
귀여웠다.
그날 우리는 조용한 미술관에 갔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시간,
전시장 안에는
그림보다도 우리 발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런 데 처음 와봤지?”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좋아.”
“괜찮지. 나 원래 예술적인 남자야.”
내가 웃자,
연준 오빠도 따라 웃었다.
가끔 말이 어색했지만
그 침묵조차 편해졌다.
미술관을 나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조용한 자리,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창가.
그는 커피를 마시며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내가, 너랑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니야.”
그 말에 나는 커피잔을 놓고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
“언제부터?”
“그날.
네가 ‘보고 싶었어’라고 했던 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조용히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돌아가는 길.
연준 오빠가 내 손을 조용히 잡았다.
손끝은 따뜻했고,
손잡는 방식도 어릴 때처럼 서툴렀다.
“너.”
그가 내 이름을 부르려다, 멈췄다.
나는 옆을 바라봤다.
“그 여름 기억나?”
“어떤 여름?”
“내가 너 보러 맨날 놀러 왔던 그 여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그 여름의 이름은 너였어.”
그리고 그 말이
이 모든 계절을 지나
나를 다시 그 여름으로 데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