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승강장

2화. 돌아갈 수 없는 역

"이거, 진짜 농담 아니죠?"

김여주는 벤치에 앉아, 아까 그 남자가 사라진 문만 한참을 바라봤다.

 

역무실.

낡은 나무문, 유리창 너머로 비친 따뜻한 조명.

딱히 안락하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다.

 

그 남자. 이름도, 직책도 모르는데—어딘가 믿게 만들어버리는 분위기를 가졌다.

다정한 말투, 정중한 거리감. 그런데도 그 안엔 이상한 쓸쓸함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누군가를 수없이 기다려본 사람의 표정.

 

 

 

 

"떠날 자격이 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여주는 입꼬리를 비죽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영혼의 기차표라도 있다는 소리야?"

 

휴대폰은 여전히 먹통.

지도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되고.

와이파이는… 뭐, 기대도 안 했다.

 

 

그때였다.

 

 

“춥진 않으세요?”

목소리는 문득,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여주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가, 다시 나와 있었다.

어느새 두 손엔 머그컵 두 개.

김이 올라오는 걸 보니 따뜻한 차였다.

 

 

 

 

“…고마워요. 근데 좀 무서워요, 솔직히.”

 

 

“무서운 게 당연하죠. 낯선 데니까.”

 

 

그는 그녀 옆에 조용히 앉았다.

 

 

여주는 은근히 신경 쓰였다.

이 거리감, 너무 정확하다.

가까워도 부담스럽지 않고, 멀지도 않은 딱 그 지점.

 

 

“저기... 이름은요?”

 

 

 

 

“원빈입니다.”

 

 

“…그 원빈이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아마 아닐 수도.”

 

 

“...진짜 너무 무책임하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려줘야죠.”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손엔 오래된 실금이 난 컵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서 김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 역은 현실의 틈이에요.

시간도, 기억도, 의미도...

모두 잠시 멈춘 곳이죠.”

 

 

“…꿈이라는 말은 안 해줘요?”

 

 

“꿈이라면 더 좋았겠죠.”

 

 

여주는 갑자기, 현실이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들을 떠올렸다.

어디서부터 망가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매일 눈을 뜨고 버티는 게 힘든 날들이 있었다.

 

 

 

 

“근데 왜 저만 이런 데 떨어진 거예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미 이유를 알고 있어요.”

 

 

원빈은 대답하는 동안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멀리 보이지 않는 철로를 향해 시선을 두고 있었다.

 

눈빛이 자꾸 과거로 향하는 사람처럼.

 

 

“…진짜 말 돌리기 선수네.”

 

 

여주는 컵을 만지작거렸다. 따뜻했다.

작은 온기, 그리고 그 온기를 내민 사람.

 

 

“저, 여주예요. 김여주.”

 

 

그제야 그가 그녀를 봤다.

 

아주 짧게 웃었다. 너무 짧아서,

그 웃음이 있었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잘 오셨어요. 김여주 씨.”

 

 

“근데 여기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자격이 생긴다는 건데요?”

 

 

“기억을 꺼내야죠.”

 

 

“기억?”

 

 

“떠나고 싶은 이유. 혹은… 떠날 수 없는 이유.”

 

 

여주는 숨을 삼켰다.

이야기하기 싫은 말, 꺼내고 싶지 않은 장면.

마치 누가 강제로 감정의 문을 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방법은 없어요?”

 

원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돌아가고 싶어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 그걸 먼저 정해보죠.

떠나고 싶은지, 돌아가고 싶은지.”

 

 

그의 말에 여주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뭘 고르든—이미 뭔가 잃은 사람이란 건 분명했으니까.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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