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승강장

3화. 편지를 쓰는 사람들

그날 밤, 김여주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역무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공간.

 


작은 침대와 오래된 책장, 달그락거리는 찬장 하나.
심지어 담요에서 나는 햇빛 냄새마저 현실 같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이곳은 머무는 데에 익숙한 공간이었다.

 

 

누가 이걸 꾸몄는지도,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여주는 낯선 꿈 속에 있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자신.
흑백 사진처럼 빛이 바랜 풍경.
비어 있는 이름, 찢긴 우표,
그리고 다 쓰고 나면 반드시... 불태워야 하는 편지들.

 

 

 

 

“……뭐야.”

 

 

여주는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띵했다.
기억이라기엔 모호하고, 꿈이라기엔 이상하게 생생했다.

 

 

역무실 거실 쪽엔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창고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여긴 또 뭐야…”

 

 

불 꺼진 작은 방 안.
창고엔 먼지 낀 물건들과 오래된 서류들 사이,
작은 나무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덜컥.

 


여주가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안에서 편지들이 쏟아졌다.

 

 

전부 보내지 못한 편지.
주소가 없는 편지,
받는 사람이 없는 편지,
혹은… 이름만 남은 편지.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읽고 싶으세요?”

 

 

 

여주는 깜짝 놀라 돌아봤다.

 


역무원. 원빈이 문가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처음부터요. 창고는 원래 못 들어가게 했었는데…”

 

 

“…죄송해요. 그냥—이게 뭔지, 너무 궁금해서.”

 

 

그는 천천히 걸어왔다.
편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요.
이 역을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편지예요.”

 

 

“누구한테 보내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요.”

 

 

“…자기한테?”

 

 

“혹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은 무언가에게.”

 

 

그 말은 이상하게 여주의 가슴을 눌렀다.

 

 

“다들 이 역에서 편지를 써요.
말로는 못한 것들, 전하지 못한 마음,
기억에 묻은 이름들.”

 

 

 

 

“그리고 그걸… 불태운다고요?”

 

 

“네. 이 역에선 기억을 지우는 방법이 아주 단순해요.
쓴 다음, 없애는 거예요. 읽지도 않고.”

 

 

여주는 멍하니 상자 안 편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삐뚤한 글씨체.
잉크가 번진 자국.
글의 시작은 이랬다.

 

 

“지금은 너를 잊어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여주는 숨을 삼켰다.

 


자신이 쓴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손이 떨렸다.
마치 누군가의 진짜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이런 거, 왜 보여줘요?”

 

 

그가 대답했다.

“보여주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김여주 씨가 꺼냈으니까요.”

 

 

“…그럼 저도 써야 하나요?”

 

 

“써도 되고, 안 써도 돼요.”

 

 

“근데 안 쓰면 떠날 수 없다고 했잖아요.”

 

 

“떠날 수 없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사람이거든요.”

 

 

여주는 조용히 편지를 다시 상자에 넣었다.
문득, 마음속에 단단하게 묶여 있던 무언가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편지를 쓰려면… 어디서부터 써야 하죠?”

 

 

 

 

원빈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진짜 웃었다.
조금 오래, 조금 따뜻하게.

 

 

“…그건요,
아무도 모를 때부터요.”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