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승강장

6화. 다시 그날로

오늘도 어김없이

기차는 자정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정확하게, 조용하게.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김여주는 기차에 오르기 직전,

다시 원빈을 돌아봤다.

 

 

그리고 물었다.

“이제 말해줘요.

왜 제가 여기에 와야 했는지.”

 

 

원빈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당신은 이 역에 온 적이 있어요.”

 

 

“……네?”

 

 

“기억 안 날 거예요.

그땐 당신이 먼저 떠났거든요.

기억을 지우고, 편지를 불태우고—

정말 완전히, 다 놓고 갔어요.”

 

 

여주는 숨을 삼켰다.

 

 

그가 계속 말했다.

“그 사람은,

당신이 떠나고 나서도

당신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그게, 당신이에요?”

 

 

원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

여주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자정, 플랫폼 끝에서

“가지 마”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웃던 사람.

 

 

 

 

“왜 아무 말 안 했어요.

왜, 내가 떠나는 걸…”

 

 

“붙잡았어요.

근데, 당신이 그걸 지우고 갔어요.

기억 자체를 없애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걸 왜 기억하고 있었어요?”

 

 

“누군가 한 명은 기억해야,

그게 진짜였던 사랑이니까.”

 

 

여주의 눈이 붉어졌다.

“…그럼, 나는 당신을 지우고 떠난 거예요?”

 

 

 

 

“그땐… 그래야 살 수 있다고 했어요.

그 사랑이 너무 아팠다고.”

 

 

잠깐의 침묵.

 

 

여주가 조용히 말했다.

“근데 왜 난 다시 여기에 온 거예요?”

 

 

“기억은 지워도, 감정은 남아요.

당신이 잊은 건 이야기고,

기억한 건 느낌이었어요.”

 

 

“…….”

 

 

“그리고 이 역은,

그 느낌을 따라온 사람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에요.”

 

 

그 말에 여주는 무너진 듯 눈을 감았다.

진짜 기억이 하나씩 퍼즐처럼 돌아오기 시작했다.

 

 

둘은 연인이었다.

 

 

 

 

작년 여름

둘은 같이 기차를 탔고,

여행지에서 크게 다퉜다.

 

 

—“난 너랑 있으면 숨이 막혀.”

—“그래. 그럼 끝내자.”

 

 

그리고, 헤어졌다.

 

 

시간이 흐른 뒤,

여주는 이 역에 왔다.

 

 

그땐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편지를 쓰고, 기억을 태웠다.

 

 

그리고 원빈은, 남았다.

그녀가 지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미안해요.”

그 말 한 마디에,

플랫폼 위 공기가 달라졌다.

 

 

원빈이 말했다.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그럼, 뭐였어요?”

 

 

 

 

“그때 우리가 진짜 사랑했던 게 맞는지—

그 대답이요.”

 

 

여주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건… 정말이었어요.”

 

 

기차가 문을 열었다.

 

 

원빈은 여주를 바라봤다.

말없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작별이 아니라,

고백에 가까운 인사.

 

 

여주는 기차에 올랐다.

마지막 순간, 문 닫히기 직전—말했다.

 

 

 

 

“이번엔 내가 기억할게요.”

 

 

기차는 출발했다.

플랫폼 위, 원빈은 여전히 서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그의 표정에 미련이 없었다.

 

 

 

📘 에필로그

 

 

김여주는 아침에 눈을 떴다.

햇살이 창가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가슴 한쪽이 따뜻하게 무거웠다.

 

 

휴대폰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온 메시지 하나.

 

 

다음번엔, 같은 기차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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