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기억을 건드리는 가장 확실한 도구입니다.”

교수의 말이 강의실 안에 조용히 울려퍼졌다.
햇살이 천천히 교탁 위로 내려앉고, 어설프게 꾸민 대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를 적거나, 혹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조향학과 신입생인 백주향은 손끝으로 펜을 굴리다가 작은 글씨로 노트에 적었다.
“사람은 향기로 특정 사람을 기억하곤 한다.”
그녀는 창가를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강의실 맨 뒷줄, 낯선 남학생 하나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에 단정한 외투, 주름 하나 없이 정돈된 모습.

“와, 저 선배 아직 졸업 안 했대.”
옆자리 친구가 수군거렸다.
“이해찬 선배. 조향계 전설이래. 교수보다 향수 잘 만든다는 말 있어. 근데 인간관계는 0이래. 진짜 아무도 안 건드려...”
“복학생이야?”
“복학생이라기보단… 그냥 계속 다니는 사람 같아. 저 선배 잘 아는 사람 없을껄?”
주향은 고개를 기울였다.
이해찬이라는 사람은 교수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표정 하나 없는데도, 눈동자 안쪽 어딘가가 어두운 웅덩이처럼 패여 있었다.
'흠... 이해찬 선배라....'
***
며칠 후, 주향은 실험 동아리방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낯선 복도 끝에 멈춰섰다. ‘출입 금지’라는 종이가 붙은 문틈 사이로 희미한 조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출입 금...지? 분명 233호라고 했는데...'
주향은 일단 문을 두드릴까 하다가, 가볍게 밀자 손쉽게 열렸다.
안은 묘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차가운 나무, 젖은 돌, 바닐라가 감도는 먼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해찬이 있었다.
'어...? 저번에 그 선배잖아..?'
해찬은 검은 장갑을 낀 채 유리 플라스크를 다루고 있었다.
실험대 위엔 향료로 쓰기엔 이해되지 않는 기묘한 재료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회색 장미, 탄화된 종이 조각, 오래된 상자 파편 등...
주향이 소리 없이 문을 닫으려 하자, 해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긴 출입금지입니다.”
“…엏 죄송해요... 몰랐어요오...”
주향은 문을 닫기 직전, 그에게서 나는 향기를 다시 맡았다.
익숙하지 않은 조합인데, 어딘가 가슴이 아릿해지는 냄새였다.
눈을 마주쳤을 때, 해찬은 어떤 감정도 띄지 않았다.
“이거… 무슨 향이에요?”
“그게 왜 궁금하시죠?”
"아... 저도 뭐 조향학과기도 하고... 향이 특이해서..."
"별 향 아닙니다. 그냥 테스트 중이라,"
"앗 넵... 죄송합니다아.. ㄴ.. 나갈께요!!"
주향이 나간 후, 해찬은 조심스럽게 향수를 피부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희미한 증기가 피어오르고 향이 피부로 스며들었지만, 그가 바라는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짧은 순간,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스쳤다.
“이 향수, 꼭 너 같아... 헤헤”
따듯한 목소리와 미소를 어렴풋이 떠오르다가 수채화처럼 사라지곤 했다. 요새는 기억하는 빈도가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시 그녀가 기억에 스며들었다.

이해찬은 허공을 바라보다 조용히 속삭였다.

“…그 애가, 다시 나타날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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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