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과 연애의 상관관계》

02 기회를 주세요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햇빛에 반짝이던 3월.

주향은 계속해서 수업에서 해찬을 마주쳤다.
그리고 며칠째, 그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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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를 펼치자 가장 위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향기로 특정 사람을 기억하곤 한다.”



‘향기 때문일까...?
해찬 선배가 왜 자꾸 생각나는 거야…’


그날, 멋대로 들어갔던 출입금지 실험실.
그 안에서 맡은 그 냄새—차가운 나무, 젖은 돌, 바닐라가 감도는 먼지.

이상한 향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았다.



‘잡생각이 이렇게 많다니, 한가하구나 백주향?’


주향은 머리를 털어내듯 흔들었다.
해찬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려 애를 썼다.






***





조향학 실습실.

“이번 과제는 ‘감정을 향으로 표현해보기’입니다.”
교수의 목소리가 실습실 안을 가득 채웠다.


“기쁨, 두려움, 연정, 후회...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어요. 각자 팀을 이뤄 향수로 표현해보세요.”


학생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주향은 무심코 옆을 돌아봤고—해찬이 이미 그녀를 보고 있었다.

깊고 조용한 시선. 그런데 확실히, 그녀만을 향하고 있었다.



“주향아, 너 누구랑 팀할 거야? 없으면 나랑…”


동기 하나가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찰나,
낯익은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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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하실래요?”
…해찬이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수도 없고, 누구와도 엮이지 않던 그가. 갑자기? 나한테?



“ㄴ…네??”



“같이 팀플 하실 거냐고요.”



“아… 너무 갑자기… 그… 엄…”



“A+ 보장해드릴게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해찬 선배님!”

주향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반 톤 올라갔다.



“야~ 뭐야~ 너 나랑 하기로 했잖아, 백주향!!”



먼저 제안했던 동기가 삐친 얼굴로 투덜댔다.

“헤헤… 미안~ 근데 A+ 보장이래잖아~ 다음에 꼭 같이 하자, 응?”





***




수업이 끝나고, 둘은 실험실에서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향료병들이 놓이고 있었다.


“감정을 향으로 표현한다… 어려운 과제네요…”
주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해찬은 대답 없이 향료를 꺼냈다.
시더우드, 머스크, 그리고 불에 탄 나무껍질.
묘하게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선배는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으세요?
그것부터 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행복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거든요!”


해찬은 손을 멈추고,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나는 좋은 감정을 향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네?”


“좋은 감정은 결국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향으로 남긴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져요.”


그는 작은 향수병 하나를 들어 흔들었다.

찰랑-
잔잔한 소리와 함께, 묘한 향이 공기 중에 퍼졌다.


주향은 그를 바라봤다.
그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말 속엔 눌린 감정이 스며 있었다.


“…혹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으신 거예요?”


주향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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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요.
평생 잊고 싶은 기억이 있죠.”


그 말은 조용했지만, 향기처럼 잔향이 길었다.






***







팀플 회의를 마치고 실험실을 나서며, 주향이 입을 열었다.


“전… 선배한테,
좋은 감정도 향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해찬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주향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제게 기회를 주세요.
좋은 감정도, 향기로 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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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대답은 없었지만, 향기보다 더 진한 무언가가
둘 사이에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