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환생으로 가는 길
초아는 남자가 말을 하는 중 그 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고 딴생각을 했었다.
꽃길일까? 하고 기대도 하다가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쓰레기길은 아닐까 하고 혼자 작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초아가 눈을 떴을 때는 초아가 상상도 못 했던 길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뭐야…?
초아 앞에 펼쳐진 길은 다름 아닌 초아의 집 앞 거리였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초아가 사는 아파트의 중앙현관.
예상치 못한 익숙한 환경에 초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 할 수 없었다.
초아는 깨달았다.
죽음은 생각보단 거창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아, 나 진짜 죽었구나.”
항상 걷던 거리였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사람으로 북적거렸던 거리에 그 누구도, 아니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걷기 적적한 초아는 비둘기 한 마리라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찾을 수 없었다.
초아는 길동무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매일매일 걷던, 약간 과장하자면 눈감고도 버스 정류장까지는 갈 수 있을 듯한 그 거리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집 앞에 약국이 있었구나… 약국 어디있는지 몰라서 한참 헤매다가 다른 동네까지 갔었는데.

저기 원래 국밥집이 있었나? 오빠가 국밥 좋아하는데…
아, 오빠.
우리 오빠 나 없으면 안 되는데…
너무 울지 않으면 좋겠다.
남편이 울고 있을까 걱정하던 초아는 되려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오빠 보고싶다…

얼마나 걸었을까 초아는 저 멀리 평소 거리에서 보지 못 했던 건물을 발견했다.
마치 커다란 각설탕에 입구를 뚫어 놓은 듯한 재미난 겉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요상한 건물에 초아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윤초아씨는 이제 한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너무나도 길고 길어 쉬지 않고는 걸을 수 없죠.”
“그 길을 걷다보면 쉼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6개의 쉼터가 있을텐데 그 쉼터에는 각각 신이 계실 겁니다.”
“그러면 그 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남자의 말을 떠올린 동시에 초아는 저 각설탕 같은 건물이 쉼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걷기만 걸어 지칠 대로 지친 초아는 쉼터로 있는 힘을 다해 다가갔고, 마침내 입구로 들어가려는 참에 초아는 멈칫했다.
그러니까… 그 남자 말로는 이 안에 신이 있다는거지…?
그 누가 살면서, 아니 죽어서도 신을 만나볼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초아는 입구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신은 어떻게 생겼을까?
신은 뭐라고 불러야 하지?
신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너무 간략한 설명만 건내준 남자가 매우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한참을 머리를 쥐고 빙빙 돌던 초아는 이내 결심이라도 한 듯 주먹을 꼭 쥐고는 입구로 들어갔다.
쉼터 안은 밖과 같이 새하얀게 발자국이라도 남을까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하얀 공간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며 감탄하던 초아는 입구 통로를 지나 여전히 새하얀 방 속 새하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초아는 무서운 것이라도 본 마냥 몸이 굳었고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약간은 어정쩡한 자세로 걸어갔다.
초아는 남자의 바로 뒤까지 왔고 또다시 굳었다.
인사부터 해야 하나?
인사는 또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면 바로 맞은편에 앉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초아의 머릿속에서 날아다닐 때,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앉으시오.”

초아는 아까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다리가 너무 아팠지만 지금은 다르다.
신과의 이 어색한 적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왔던 길을 다시 가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신은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는 그저 무언가 적혀있는 종이만을 턱을 괴고 읽고 있을 뿐이었다.
“저…”

“아, 아니에요.”
“말해보시오.”
딱히 할 말이 있어서 불렀던 건 아닌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정말 쓸데없는 질문이지만 이 고요함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초아 딴에는 최선의 질문이었다.
“민윤기.”
우와, 이름 되게 예쁘네.
아차.
초아는 무서운 인상과는 달리 예쁜 이름에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입 밖으로 뱉어버렸다.
윤기는 피식 웃더니 언제 웃었냐는 듯 정색했다.
“아, 제 이름은…”
“윤초아.”
“아, 알고 계시네요…”
이 대화를 끝으로 둘 사이에는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윤기는 이제서야 종이의 내용을 다 읽었는지 종이를 내팽겨치고는 초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
“네?”
“내가 첫번째인가?”
“…네?”
“아, 그렇죠.”
“그렇군.”
윤기는 약간 귀찮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고, 초아는 영문도 모른 채 그런 윤기를 보고 있었다.
“그대는 앞으로 나 이후에 5명의 신을 더 만나게 될 것이오.”
“여기까진 421번에게 들었을테지.”
초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윤기는 좋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신에 따라 이야기의 주제가 다를 것이오.”
“각자 맡고 있는 영역에 따라서.”
“그리고 내가 맡고 있는 것은”
“죄.”
“지금부터 생전 그대의 죄에 대하여 이야기 할 것이오.”
“…하.”
갑작스러운 초아의 헛웃음에 윤기는 초아를 빤히 보았다.
“왜 그러시오?”
“아, 아니에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저는…”
“살면서 큰 죄를 지었답니다.”
“글쎄.”
“기록에 따르면 그럴 만한 문제는 없어보인다만.”
“…”
“제 아이를 지키지 못 한 것만큼
어미에게 큰 죄가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