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문 앞에서-
여름방학 첫날, 여주는 멍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연습이 없다는 말에 겨우 눈을 떴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항상 옆방에서 들려오던 형들의 목소리, 리더의 잔소리, 정한 오빠의 느릿한 인사… 오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스케줄 갔구나…”
세븐틴의 막내, 열일곱 살 여주는 오늘 하루 휴가를 받았다.
교복이 아직 익숙한 고1,
평범했다면 방학 숙제를 걱정해야 할 나이지만,
그녀의 하루는 연습과 스케줄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
조용한 숙소에 혼자 남겨진 게 처음이라, 여주는 이상하게 들뜬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소엔 잘 나가지도 않던 동네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도서관은 조용했다.
에어컨 바람에 섞인 책 냄새가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여주는 좋아하는 시집 코너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까만 모자, 낯익은 등.
그리고—웃음소리.
“…정한 오빠?”
그가 천천히 돌아봤다.
익숙한 장난기 가득한 표정.
“어? 너 여기 왜 나와?”
“나 휴가 받았는데… 오빠는? 스케줄 아니었어?”
“몰래 빠져나왔지. 조용한 데 가고 싶어서.”
정한은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표지는 연보라색, 제목은 『그 여름, 우리가 빛났던 순간』.
여주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책도 읽어요, 정한 오빠가?”
“읽진 않고, 그냥 표지 예뻐서 들었는데?”
정한은 웃으며 책을 다시 꽂았다.
그 순간, 여주는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얀 셔츠에, 살짝 젖은 머리, 모자 아래로 보이는 눈빛.
‘뭐야, 왜… 어른 같아 보여.’
“그럼… 나랑 잠깐 산책할래?”
정한이 물었다.
여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 문이 열리고, 햇살이 둘 사이로 흘러들었다.
바람은 따뜻했고, 그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