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의 맛

03. 접점











늘 그렇듯 수업시간은 지루했다

조곤조곤한 선생님 목소리에 자꾸만 하품이 나왔다
잠시 눈을 붙이려 엎드리니 순식간에 수업이 끝났다

언제 잠든 건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졌다

하품을 진득하게 내뱉으니 옆에 있던 한경은은
깔깔거리며 나를 놀려댔다


“ 야 니 입 벌리고 자더라 ㅋㅋㅋㅋㅋ ”


무거운 눈꺼풀을 부비적대며 계단으로 향했다
한 칸씩 천천히 내려가는데 저 밑에서
신입생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보이는 익숙한 얼굴은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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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인

저번에 그 신입생 남자애

이 두 마디가 머릿속을 스쳤다

끝까지 나를 응시하던 눈동자는
오로지 나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괜히 민망한 탓에 치마를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 뭘 쳐다봐 변태 새끼야 ”

“ 아..! 죄송합니다 ”


머쓱한 듯 뺨을 긁으며 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뒤를 돌아봤을때 보였던 것은
덩달아 뒤돌아보는 그 아이의 얼굴이 아닌
잔뜩 붉어진 귀만이 보였다









요즘 들어 양정인과 접점이 꽤나 많아진 것 같다

저 여우 같은 놈이 일부러 접점을 만드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1학년과 2학년의 동선이 겹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모든 학생들은
부리나케 급식실로 뛰어갔다

반면에 나는 아주 느긋하게 친구들과 급식실로 향했다

현재 3학년들은 자격증 준비 및 취업 준비를 위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지금의 2학년이 대장이라고 볼 수 있다

급식은 높은 학년부터 받을 수 있었기에
신입생들을 하나 둘 밀쳐내고 줄을 섰다


“ 야 비켜 ”


내성적인 나를 위해 착한 친구들이 자리를 맡아주었다

토마토 스파게티에 함박 스테이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급식 메뉴이다




앉는 자리는 학년 반 따질 것 없이
원하는 곳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제일 구석진 창가 자리를 향했다

이 자리가 제일 조용하고
학생들이 찾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에
항상 친구들과 여기서 급식을 먹곤 한다

식사 중 대화 주제는 오로지 남자였다

썸타다 깨진 오빠
바람핀 전남친의 근황
헛소문을 퍼뜨린 남사친

그리고 양정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바쁘게 남자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는 사이에
나는 스파게티와 함박 스테이크를 번갈아가며 입에 넣었다

이상하게 다른 남자들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양정인이라는 아이의 이름이 나오니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섰다


“ 근데 걔 약간 내 스타일이야 완전 여우상 ”

“ 좀 귀엽긴 하더라 운동도 잘 한다던데 ”


대화를 귀기울여 듣는 나 자신을 자각하고는
순간 멈칫했다

정말 내 취향도 아닌데
그냥 나와 관련있는 애가 대화 주제로 나와서
멈칫한 거라고 생각했다


“ 아~ 내가 걔 번호 받아올 걸 ㅠㅠ ”

“ 야 태희야 그냥 한 번 먹고 버려 ”


짜증이 솟구쳤다


“ 뭘 먹고 버려 음식도 아니고 “


수진이의 볼을 세게 꼬집으며
천박한 말버릇을 고치라고 다그쳤다

아무리 그래도 신입생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일텐데
생각 없이 저런 말을 내뱉은 수진이가
내 친구라는 것이 살짝 창피했다

붉어진 얼굴을 내저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니
다른 친구들도 다같이 나를 따라서 일어났다

냅다 잔반통에 남은 급식들을 와르르 쏟아붓고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 아 진짜 밥맛 떨어지네..
그러게 밥 먹을 때 더러운 얘기를 왜 해 “


수진이는 나의 눈치를 보다가
기분 풀라며 담배 두 개비를 손에 쥐어줬다









1층 아지트로 가는 길에 또 그 아이를 마주쳤다

조용히 지나가려고 하던 찰나에


“ 저.. 선배님 “


손목을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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