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빚진 시간

18 빨갛게 물든

지민이 노창기가 모르게 소희 옆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거리는 한 뼘.

 

소희의 손등 옆, 그림자가 겹쳤다.

그는 말없이 소희의 손을 잡았고,

무언가를 조용히 쥐어 주었다.

 

 

 

 

 

'...?'

 

 

 

 

문이 열리고, 소희는 지민이 준 무언가를 쥔 채 노창기를 따라 나섰다.

붉은 카펫, 낮은 조명, 두꺼운 문이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화연 씨, 잠시만 여기서.”

 

 

 

 

소희는 손바닥을 살짝 말아쥐었다.

지민이 쥐어 준 작은 것이 피부에 묵직하게 닿았다.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왠지 어딘가 익숙했다.


 


문 앞에 서있는 동안, 얇은 안경의 보좌관이 들어와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홍콩.”

 


“오신 루트는요?”

 


“비행기지 뭐”

 


“암호 말씀 부탁드립니다.”

 


“7시 45분”

 

 


"확인 감사합니다, 화연님"

 


보좌관이 태블릿을 들었다.

“얼굴, 기록하겠습니다.”

 


'얼굴이 노출됐으니,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네'

 


찰칵—

렌즈가 반짝였고, 그렇게 사진이 찍혔다.

 


"들어가시죠,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보좌관을 따라 들어간 곳에는 기분 나쁜 서늘한 냄새가 나는 화려한 공간이 펼쳐졌다.

 


뚜벅 뚜벅-

 


검은 구두가 카펫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강우였다.

 


그는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손을 얹고 소희를 훑어보았었다.

 


“홍콩 라인의 화연. …낯이 익군. 어서오시게,”

 


화장은 짙었고, 그의 시선은 의심보단 흥밋거리 쪽에 가까웠다.

 


“거래처 사장님이 예쁘장하네.”

 


그가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감았었다.

손이 퍼와 원피스 사이로 매무새를 스쳤다.

 


"마침 오늘 내 옆자리가 비었는데, 자고 갈텐가? 하하!!"

노창기는 소희의 치마 안자락으로 음흉하게 손을 집어 넣었다.

 


소희는 이 상황에도 미소를 떠올렸다.

숨은 목 끝까지 차올라와 있었지만—

 

 

'참자. 참아, 한소희. 이깟 더듬는 거 정도, 허용해도 돼. 오늘... 이 새끼는 죽을 꺼니까'

 


“회장님, 저 만지시는 것도 다 돈이에요?”

 


"하하!! 얼마면 되나?"

 


"음 한 1경? ㅎㅎ"

 


"허허... 비싸게 구는구만?"

 


"이만 빼시죠, 본론 얘기하시고 좋은 시간 보내도 늦지 않아요ㅎ"

 


그의 귓가에서 가까이 다가가 말을 흘리곤,

이내 소희는 옆 쇼파로 가서 퍼를 여며 올렸다.

 


“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ㅎㅎ 회장님도 참~"

 


소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더러운 새끼, 금방 죽여주마'

 


옆에 서있던 보좌관이 손바닥 스캔기를 들이댔다.

“손님, 최종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그 순간, 소희의 엄지가 손바닥 안쪽 작은 캡슐을 ‘딱’ 눌렀었다.

 


‘치이익—’

 


미세한 연기가 물안개처럼 번졌다.


 



 


‘펑!!!’

 



 


탁자 아래서 짧은 굉음이 터졌고, 책상이 무너지고 유리잔이 쏟아졌다.

큰 소리와 먼지로 화려한 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희는 치마를 찢곤 허벅지 안쪽 밴드에서 총을 빼냈었다.

 


 

슬라이드를 잡아당기고, 조준선을 올렸다.

신강우의 심장.

 


'조금만...더 조준하면... 연...연기가.... 너무 많아'

 


“멈춰—!”

보좌관이 소희를 향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탕!!’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옆 복부로 뜨거운 것이 번졌다.

 

생경한 고통에 숨이 ‘컥’ 막히고는, 퍼가 스르르 젖어 들었다.

 



 



 


그때—문이 쾅 하고 열렸었다.

지민이었다.

 


첫 발은 보좌관의 손목.

 


‘탕!’

 


두 번째 발은 보좌관의 어깨를 명중시켰다.

지민은 소희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돌렸다.

피가 그의 손목을 타고 흘렀다.

 

 

"ㅍ..... 피가...."

 


“소희야 괜찮아?”

 


입술이 떨렸다.

연기 틈에서 신강우가 총을 들었다.

터진 폭단에 얼굴과 팔은 그을렸지만, 그의 눈은 또렷했다.

 

하지만 연기를 너무 많이 흡입한 탓인지, 이내 그의 팔이 툭 떨어졌다.


 


“후퇴 루트 열렸어 지민아!!”

해진의 무전이 지민의 귓가를 스쳤다.

 


“북측 비상구 요원들 다 치워놨으니 거기로 와”

 


지민은 루트를 파악하곤,

소희의 다리를 끌어올려 안았다.

 


“조금만 버텨.”

 


“지… 민… 씨… 나, 아직…”

 


“말하지 마. 숨, 천천히.”

 


그는 연기 속을 뚫고 문턱을 넘어섰다.

지하주차장에 대기 중인 검은 SUV에 조심스럽게 소희를 눕히고 벨트를 걸어 주었다.

셔츠는 이미 피에 젖어 있었다.

 


 

“소희야 많이 어지러워?”

 

 


"아...아직...."

 

 


"나중에, 나중에 들을께.

금방 저택 도착하니깐... 조금만— 조금만 버텨”

 

 

 

소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끝…났어요…? 그 사람….”

 

 

 

“..... 나중에,”

지민은 소희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피와 땀이 뒤섞여 미끄러웠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아무에게도 들려 준 적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우리 치료 먼저 하자 응?"

약간의 울먹거림이 남아있었다.

 

 

 

 


“… 너가 죽으면—

나,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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