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빚진 시간

20 엇갈리는 시간

병실은 고요했다.

소희 옆에 있는 기계의 소리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고 있었다.

 

‘삐—… 삐—…’

 

 

"소희야, 오늘도 안 일어날꺼야?"

 

 

지민의 소희의 손을 가만히 쓸었다.

의사는 소희의 상태가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 눈을 뜨지 않은 탓에 지민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같이 여행가기로 했잖아... 프랑스도 가고... 일본도.. 대만도...

듣고 있어?"

 

지민은 나즈막히 누워있는 소희 옆에 앉아 혼잣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때 소희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움찔-

 

"ㅅ... 소희야, 진짜 .. 진짜 듣고 있는 거야?? 소희야... 소희야!!! 해진형 의사!! 빨리 !!!"

 

"ㅇ... 어!! 지금 당장 주치의 부를께 !!"

 

지민은 놀라서 소희의 손과 이마를 쓸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소희야 들려? 들리는 거야? 무슨 말이라도 해봐 제발...."

 

"..... 들.... 려....."

 

"ㅅ... 소희야!!!"

 

소희는 결국 눈을 뜨고야 말았다.

지민은 소희의 손을 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모든 게 다 괜찮습니다. 이제 진짜 안정만 취하시면 될 것 같네요, 상처가 아물 때까지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소희는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눈은 떠 있었지만, 초점은 어딘가 멀리 가 있었다.

 

주치의가 나가고, 지민은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손은 소희의 손을 잡은 채였다.

 

“노창기 있잖아...."

 

지민이 입을 열었다.

 

 

“내가 끝낼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니”

 

소희는 힘이 없는지 처음 목소리는 희미했다.

하지만 숨이 빨라지면서 점점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냐.. 아냐!!!!!”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소희야 -”

 

“그건 내가 해야 돼!!!!”

 

링거 줄이 흔들렸다.

심전계가 짧게 요동쳤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내가....”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의 어깨를 잡았다.

 

“넌 지금 서지도 못해!!! ...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

 

“또 다치게 할 수 없어, 널”

 

“그럼 난 뭐야?”

 

소희는 숨을 들이켰다.

 

“난 대체 스스로 뭘 할 수 있는거야? 난 끝까지 지켜져야만 하는 존재냐고!!!!!”

 

지민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런 말이 아니ㄹ...”

 

“그럼 왜 또 나 빼고 결정해요!”

 

 

소희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참고 있던 게 한꺼번에 터진 얼굴이었다.

 

“왜 항상 나 대신 끝내려 해요! 왜 항상 나 없는 데ㅅ....”

지민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소희를 끌어안았다.

 

“그럼 내가...

“내가 널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거야, 소희야…”

 

지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숨이 끊어질 듯 가슴이 아팠지만, 지민은 그저 소희를 끌어안았다.

 

소희는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행복? 그런 거 원래 나한테 없었어. 어렸을 때 부모님 죽던 날부터.. 나에게 행복은 사치였던 거야."

 

"아냐 소희야, 다ㅅ..."

 

"아니, 당신도 나에겐 과분한 존재라는 거, 사랑은 내가 사치라는 거 이제 알게 되었나봐"

 

 

 


 

 

 

 

그날 이후,

소희는 병실을 벗어나지 않은 채 창 밖만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민은 곁에 있었지만, 둘 사이엔 말이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소희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다.

 

그 사이, 지민은 굳은 결심을 내렸다.

“노창기가 죽으면, 소희도 멈출 거라 생각해.”

 

해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건 소희가 원하는 게 아닌 것 같던 걸”

 

“내가 해야해. 그러지 않고서는... 소희를 내 곁에 둘 수 없어...

소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난 소희를 지켜서, 내 옆에 둬야겠어."

 

 

 


 

 

 

 

그날 밤, 지민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게 누구셔?"

 

“나와. 내일 결판을 내지.”

 

"먼저 공격하신 분이 누구더라? 지금 나도 몸이 성치 않아서 말야~ 한 판에 결판을 내자고"

 

"허튼 수 쓰면... 알지?"

 

"하하하!!! 누가 할 소리, 우리 화양의 명예를 걸고 정정당당하게 나오라고?"

 

커튼 뒤, 소희는 그 통화를 들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 다른 생각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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