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창문으로 햇빛이 조금씩 들어왔다.
소희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은 많이 나아졌지만,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지민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접었다 폈다.
사실 글자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희야.”
그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오늘은 좀 어때.”
“…괜찮아요.”
대답은 늘 그랬다.
짧고, 무미건조했다.
“의사가 오늘부터는 조금씩 걸어도 된대.”
“…그래요.”
지민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뭐라도 더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았다.
잠시 침묵.
“아까… 과일 좀 사 왔어.”
“…먹고 싶으면 드세요.”
“너 먹으라고.”
“…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지민은 웃지도, 한숨을 쉬지도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소희는 갑자기 말했다.
“…지민 씨.”
“...응? 뭐 불편한 거 있어?”
“이제 복수 얘기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지민의 손이 멈췄다.
“…무슨 말이야.”
“그냥.... 지금은 살아 있는 것도 벅찬 것 같기도 해요. 지민 씨 말대로...”
그 말에 지민의 얼굴이 풀렸다.
아주 잠깐, 정말 잠깐 지민은 안도했다.
“그래. 그만하자, 잘 생각했어..!”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당신도 힘들잖아요.”
“난 괜찮아.”
“거짓말.”
지민은 웃었다.
“너보다야.”
소희는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지민이 잠든 뒤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일주일 후.
소희는 혼자 서 있을 수 있게 됐다.
걸음은 느렸지만,
눈빛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지민은 외출 준비를 하며 말했다.
“오늘은 해진이랑 잠깐 일 있어.”
“금방 다녀올게.”
“네...ㅎㅎ 잘 다녀와요!”
“집에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내가 애야? ㅎㅎ 괜찮아요. 다녀와요"
지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소희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금방 올게.”
문이 닫힌 순간,
소희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녀는 천천히 옷장을 열었다.
미리 준비해둔 가방을 꺼냈다.
헬멧, 장갑, 그리고—
총.
소희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창밖을 봤다.
‘이번엔… 진짜로 끝낸다. 내가...’
지민의 차가 저택을 벗어나는 걸 확인한 뒤,
소희는 곧바로 오토바이를 꺼냈다.
엔진이 낮게 울렸다.
부웅—
지민은 몰랐다.
자신의 바로 뒤에서,
소희가 같은 길을 달리고 있다는 걸.
버려진 공장 지대.
노창기가 먼저 와 있었다.
담배를 물고, 비웃듯 서 있었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
지민은 차에서 내렸다.
“.... 빨리 끝내자.”
“하.. 하하하하 !!! 너도 참 급해”
주변에서 사람들이 움직였다.
서로의 패거리였다.
총성이 터졌다.
지민은 몸을 낮추며 전진했다.
노창기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연성의 아들, 별거 없네.”
주먹이 오가며, 숨이 엉켰다.
노창기가 웃으며 말했다.
“너 죽고 나면— 그 여자도 곧 따라가겠지!!!”
"크윽 !!!"
"죽어라 박지민 !!!!! 한입 거리도 안 되는 ㄱ..."
그 순간.
탕—!
소리가 갈랐다.
노창기의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눈이 커졌다.
“컼!!.... ㅁ... 뭐…야…”
총성이 한 번 더 울렸다.
그는 그대로 무너졌다.
지민은 얼어붙은 채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소희가 걸어 나왔다.
총을 든 채.
숨은 조금 가빴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소희는 노창기 옆에 쪼그려 앉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게 내 복수야.”
노창기의 눈이 흔들렸다.
“니가 저지른 일은…다 돌아와.”
소희는 울고 있었다.
웃으면서.
“이 정도면… 편하게 죽는 거야.”
탕—
마지막 총성이었다.
소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민이 달려와 소희를 끌어안았다.
“소희야… 너 어떻게...!!!”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무서워요.”
"ㄴ...너!!!!"
“…근데 끝난 것 같아요. 모든 게.... 너무 ...”
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더 세게 안았다.
그날 밤,
결국 모든 게 끝났다.
.
.
.
.
.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