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여인

01| 폭군의 여인

writer. 진석진







{폭군의 여인}

제1장: 3년 만에 다시 본 그의 모습.

















어느새 차가워진 새벽녘 공기에 궁안에서의 생활은 한층 더 외롭고 쓸쓸해 저만 갔다. 여기저기서 오가는 궁인들의 말소리를 듣는 재미도 있었지만 공허해진 마음을 달랠 길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반가운 마음에 어서 들어와 재밌는 세상 얘기 좀 나누어 볼까 했는데, 어째서 그녀의 뒤로는 처음 보는 고운 여자 또한 뒤따라 들어왔다.


"황후폐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김상궁 어서 들어오게나."


그나마 내 마음을 달래주는건 말동무라도 해주는 김상궁밖엔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반가운 마음에 어서 들어와 재밌는 세상 얘기 좀 나누어 볼까 했는데, 어째서 그녀의 뒤로는 처음 보는 고운 여자 또한 뒤따라 들어왔다.


"그 처자는 누구인가?"

"아, 인사드립니다, 황후폐하. 소녀, 저 밑 강령촌 마을에서 온 임수아라고 하옵니다."

"그래, 소개는 되었고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느냐?"

"어.. 저기 폐하.."


아 또 저 표정. 또 무언가 골란 한 일이 생겼거나 말하기 힘든 난처한 소식을 전해야 할 때만 나타나는 김상궁의 저 표정. 그럼 대충은 짐작이 갔다.


"폐하께서 이 아이에게 후궁 첩지를 내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정확히 예상한 대로였지만, 무언가 마음이 쓸쓸하긴 했다. 그저 질투심이 아닌, 황후의 권력을 모두 황제에게 빼앗긴 기분. 명백히 후궁 첩지의 권한은 내명부의 수장인 나에게 있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이젠 아무렇게나 이래라저래라 하는 꼴이라니.


"송구하옵니다, 마마.."


그것도 고작 사냥터에 나갔다가 발견한 마음에 드는 어느 집안 여식을 데리고 와서는 나에게 후궁 첩지를 내려달라?


"네가 송구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그저 내가 안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행하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다."

"마마..! 어찌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십니까."

"김상궁."

"예, 마마."

"속히 폐하가 있는 곳으로 날 인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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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황후 마마께옵서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하거라."


웬일인지 그의 방에는 여러 후궁 또는 기생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님, 내가 올 것을 예상한건가.


"황후."


들어온 그의 방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평소였으면 후궁의 저고리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고 여러 신음소리들이 터져 나와야 정상이거늘.


"예, 폐하. 말씀 아뢸 말씀이 있어 이리 갑작스레 방문하게 되었사옵니다."

"아, 그래. 그것이 무엇입니까."


뭐라 해야 할까, 그의 말은 뻔뻔하기보다는 무엇을 바라는 말투였다. 마치 내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해줄 것처럼 기대에 찬 눈빛 또한 날 향해 있었다.


"오늘 저에게 귀여운 여식을 한 명 보내 셨더군요."

"네, 그랬지요."


내가 그녀에 대한 예기를 꺼내자 그의 눈빛은 조금 더 기대에 차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그녀에게 후궁 첩지를 내려주길 저렇게나 바라고 있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항의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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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래요."


그의 목소리엔 분명히 신남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


"내명부의 일은 엄연한 저의 권한입니다. 폐하께서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 할지라도 저의 권한을 앗아가는 것은 옳지 않은 행위임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째 설까, 그의 눈빛은 나의 말을 들은 뒤 더욱 빛났다.


"예, 그렇지요. 그래서요?"

"다음부턴 이런 행위는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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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번에는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다음부턴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뭐지? 순간 그의 너무 활기찬 대답에 나도 모르게 당황한 낯빛이 드러났다. 후궁 첩지에 대해서 그에게 뭐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가, 당연히 그는 나의 말에 시비를 걸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후궁 첩지를 내리고 싶으시다면 저와 함께 있을 때 말씀해 주십시오. 이리 사람을 시켜서 하면 명백히 폐하와 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더 않좋아 질 것입니다."


아, 그 순간. 그의 표정이 하나하나 굳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 이 말이 그에게 더 좋아야 될 말이 아니던가? 아니면 내 말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었던가? 그의 굳어진 표정에 나도 덩달아 몸이 굳어 내가 뱉은 말의 문제점을 찾고 있을 때였다.


"황후는.. 황후는 질투라는 것도 나지 않는 것입니까?"

"예?"

"오늘 제가 당신에게 보여준 아이만 해도 34번째 첩이 되는 것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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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 일처럼 말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언성을 높히는 그에 당연히 몸이 움츠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런 나를 눈치칬는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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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입니다, 황후. 자그마치 내가 당신을 기다린 시간이 3년이란 말입니다."

"..저, 폐하."

"당신이 나를 봐주지 않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당신을 나에게로 돌려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부분데, 질투 정도 아니 그냥 화라도 한번 내면서 그러지 말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와 내가 혼인한지는 이미 3년이 조금 넘어갔다. 나는 그저 그를 여태껏 이 나라의 왕이라 생각했지, 나의 지아비라고 생각한 적은 극히 드물었다. 황제 부부는 당연히 그런 줄 알았으니.


"짜증이 나 미칠 것 같습니다."

"왜, 왜 당신은 이렇게도 나에게 무심한지 3년 동안이나 고뇌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것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이런 모습은 정말 처음이라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정말 그에게 이런 마음이 있는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으니.


"당신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억지로라도 쟁취해야겠습니다."

"..폐하."

"이내관!"


속사포로 내게 말하던 그는 어느 시 눈물을 그친 채로 이 대관을 불렀고, 당황한 이 대관은 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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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황후는 내 침소에서 생활할 것이다."

"폐하..!!"

"황후의 모든 생필품들은 내 방으로 옮기거라, 또한 황후가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폐하!"

"내 말을 거역하는 이가 있으면, 가차 없이 목이 날아갈 것이다."


3년 만에 다시 본 그의 모습은 놀랍도록 매섭고 차가워져 있었다. 마치 외로움과 집착에 찌든 사람같이.